YONGHE TEMPLE
옹화궁 雍和宮
보보경심 4황자 윤진(오기륭)
강희제를 이어 옹정제(雍正帝)가 되는 4황자 윤진
그 윤진이 황자시절 거처하던 곳이 바로 이곳 옹화궁이다.
옹화궁은 1694년에 완공되었는데 본래 환관의 수장인 대내총관(大內摠管)의 자택이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인 강희제는 자신의 넷째 아들인 윤진(옹정제)에게 하사하였고,
윤진이 옹친왕이 됨에 따라 옹친왕부(雍親王府)로 불렸다.
1722년 윤진이 옹정제로 즉위하자, 옹정제는 옹친왕부를 옹화궁으로 개명하고 반은 라마교 사원, 반은 행궁으로 만들었다.
그 아들인 건륭제 때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금색 기와로 칠하고 행궁 부분도 모두 헐어 황실 전용 라마교 사원이 되었다.
옹화궁
베이징 시내에서 옹화궁 찾아가는 방법
버스는 6, 13, 18, 62, 116, 807번 등을 타고 옹화궁에 하차하면 된다.
하지만 말이 안통하는 북경에서 버스타는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니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는데, 다행히 지하철 옹화궁역이 있으므로 거기서 하차하면 된다.
다만, 지하철역을 나오면 위 지도의 제일 윗쪽(A표시) 만복각쪽으로 나오게 되는데
옹화궁의 입구는 지도 제일 아래쪽까지 내려와야 한다.
지하철역을 나오면 상점이 즐비한 거리를 찾으면 되는데
헷갈리면 옹화궁 담벼락만 따라간다.
그리고 여기가 보이고 좀더 지나가면 옹화궁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
여기가 옹화궁의 입구
옹화궁 패루(牌樓)
자..이제 표를 구입하고 옹화궁 본격적인 옹화궁 관람
입장료가 25원인데, 조그만 CD로 해서 준다.
역시나 여기서도 국제학생증은 사용불가
베이징 내에서는 외국인 여행객이 많아서 그런지 국제학생증이 거의 통용이 안된다. 아쉽구로..
역시 중국이다.
황자 시절 머물던 곳임에도 이렇게 넓다.
옹화궁의 정문인 소태문(昭泰門)
포대화상(布袋和尙)
배불뚝이 모습을 한 이 불상은
9세기 말 현존했던 스님을 모델로 했다고 하는데,
큰 포대에 온갖 필요한 일용품들을 넣고 다녀서 포대화상, 한마디로 자루스님
금복주에서 많이 봤는데..ㅋ
동정(銅鼎)
청동향로인데 동전 던지지 말라고 해도 안에 보면 동전 가득..
좀 가져가면 안될까?ㅋ
옹화궁雍和宮
청나라 글자인 만주어와 한자, 티벳어, 몽골어 4가지로 현판에 적혀있다.
옹화궁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청나라 옹정제가 황자시절 머물렀던 사저이자, 그의 아들 건륭제가 태어난 곳으로서
옹정제가 황제에 오르면서 옹친왕부에서 옹화궁이 되었고,
건륭제에 이르러 라마교를 신봉하는 티벳과 몽골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티벳불교인 라마교 사원으로 바뀌게 된다.
여하튼,
2명의 황제를 배출한 이곳은 황제의 거처에만 사용되는 붉은 벽과 황색 기와로 되어있다.
강희제의 유조와 정변
강희제의 전위조서
‘14황자 윤제에게 물려준다.’(傳位十四皇子)에서 ‘4황자 윤진에게 물려준다.’(傳位于四皇子)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에도 약간의 황당한 점은 있다. 당시 ‘어조사 우’(于) 자가 널리 쓰이지 않았고 황실 문서에서는 ‘어조사 어’(於) 자만이 쓰였다는 점과 유조같이 중요한 공식 황실 문서에서는 만주 문자와 한자를 다 써야 하나, 이 유조는 한자로만 쓰였다는 점, 황자들에게는 반드시 태어난 순서에 따라 그 앞에 황(皇) 자를 붙여 써서 만약에 윤진에게 넘겨준다 하였으면 황사자(皇四子)로 표기했어야 하나 이렇게 표기하지 않고 사황자(四皇子)로 표기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윤진이 즉위하자 은근히 윤제만을 편애하던 윤진의 모비 덕비 오아씨도 윤진이 아버지를 시해하고 황제에 오르자 윤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1723년(옹정 원년) 초에 목을 매 자살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당시 북경 내성의 9개 성문은 당시 내성을 통괄하던 융과다의 명으로 강희제의 사망일인 12월 20일을 기준으로 6일 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한다.
내용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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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경심에서 14황자역을 맡은 임경신
강희제의 총애를 받았던 14황자
야사가 맞다면 그가 강희제를 이어 황위에 올랐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동복형인 4황자가 황제가 되었음에도 친형인 옹정제에 의해
모든 작위를 삭탈당하고 강희제의 무덤을 지키는 능지기로 남은 여생을 살아가게 된다.
아..개인적으로 보보경심 보면서 14황자가 제일 괜찮던데..
약희 이것이 너무 남자를 많이 잰다. ㅋ
강희제의 경릉 바로가기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568
라마교 Tibetan Buddhism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파되었으며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벳으로 시집가면서 중국불교
그리고 티벳의 민속신앙인 본교
티벳의 국왕이 불교에 기반한 통치를 위해 인도로부터 직접 수입한 후기 대승불교 등이 통합된 것으로
스승인 라마(Lama)를 중시하여 라마교라고도 불린다.
또한 원나라의 지배하에서 오히려 종교적 영향을 미쳐 티벳불교는 원나라의 국교가 되었기 때문에
현재 티벳불교는 몽골과 티벳, 인도북부와 히말라야산맥의 국가들에서 주로 신봉되고 있다.
티벳과 외몽골이 청나라 영토로 편입된 것은 청나라때였는데
건륭제는 이러한 외교 관계를 위해 옹화궁을 라마사원으로 만든 것이다.
법륜전(法輪殿)
아쉽게도 내부는 촬영금지
여러 화려한 불상들과 볼거리가 많은데, 조폭처럼 생긴 스님들이 곳곳에 지켜서서 사실 위압감이 들 정도..
만복각(萬福閣)
옹화궁에서 제일 큰 전각으로 내부에 지상 18m, 지하8m로 총 26m의 크기의 미륵불이 있다.
하나의 통나무로 깍아 만든 것으로 티벳 라마 7세가 건륭제에게 바친 것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역시나 사진촬영 금지라서 아래 사진은 공개된 사진을 퍼왔다.
미륵불 Maitreya Buddha
사진은 작아서 실감이 안나지만
실제로 봤을 때 그 규모가 어마어마 해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 만복각 앞쪽 전각에는 여러 희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불교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정말 볼거리 많으므로 꼭 이 곳 내부를 둘러보자.
사실, 전시관이 있는지도 몰라서 여기는 밖에서 사진만 찍고 그냥 스쳐 지나갈 뻔.
역시 내부는 사진촬영금지라 안에 전시된 불상을 찍지는 못했다.
다시 돌아나오면서 찍은 비정(碑亭)
비정의 내부 모습
이 돈 줏어가고 싶은 충동이..ㅋ
사천왕상이 있는 옹화문
옹화문 앞의 사자상
요 사자는 암컷이다..우찌 아냐고?
밑에 새끼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뒤쪽 수컷은 새끼가 아닌 구슬처럼 생긴 것을 갖고 있었다.
옹화궁 지도
이든의 배낭기 EDEN @ WILSHIRE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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