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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 우왕의 무덤 '대우릉'

Eden Choi 2009. 12. 13. 02:03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 우왕의 무덤 '대우릉'

 

 


대우릉(大禹陵)


 

중국의 시조 설화를 보면 삼황오제(三皇五帝)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삼황오제란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이 삼황(三皇)이며,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의 오제(五帝)를 말한다.

사서에 따라 삼황을 다르게 보는 경우도 여러 있지만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을 취했다.

이 오제 중 마지막 두명이 '요순시대'로 알려진 요()와 순()이다.

그리고 이 순임금에게 다시 선양을 받아 왕이 된 인물이 우(禹)왕인데

이 사람이 바로 중국 최초의 세습왕조 '하(夏)나라'의 시조가 된다.

 

오늘 찾아가는 샤오싱에 있는 대우릉(大禹陵)은 이 우왕의 무덤인데,

전설속의 인물이기에 기록에 그가 죽었다는 곳에 만든 가묘이다.

이 우왕은 13년간의 치수에 성공하여 제순의 선양을 받아 즉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의 일부 사서에서는 그가 순임금의 아들인 단주를 죽이고 즉위하였다는 설도 있다.

(기록에는 순임금이 치수에 실패한 우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래서 그 아들인 우가 다시 이어서 치수에 성공함)

여하튼 여기서 치수란 당시 범람하는 황하를 가리키는 것으로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삶과 직결되는 것이라

우는 갈수록 그는 신격화 되었고

 역대 왕조를 거치면서 현재와 같은 거대한 대우릉이 건설되었다.


하나라 우왕 치수의 흔적 황하 맹문산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6318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간단히 고대 중국사를 정리하면

하나라를 이은 것은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기록뿐만 아니라 유물로도 실체가 밝혀진 상(商)나라이다.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허라서 '은'나라로도 알려져 있다.

상나라 말기에 이르러 장안에서 '주(周)'족이 등장하여 문왕이 주왕조를 설립되고

그를 이은 무왕이 상왕조와의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주나라가 들어서게 된다.

주왕조 무왕이 신하의 몸으로 임금인 제주를 토벌하려 하자,

이에 반하여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는 고사나

낚시로 천하를 낚다가 주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강태공의 고사 등은 모두 이때 배경이다.

 

그 다음은 주나라가 세력이 약해져 여러 제후국들이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되며

이를 하나로 통일한 것이 진시황제이다.

이에 진시황제는 왕(王)이라는 용어보다 더 권위있는 칭호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것이 위 전설에 나오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황(皇)과 제(帝)를 따서 만든 황제(皇帝)이다.

시황제 이후로는 2황제, 3황제, 4황제..이런식으로 계속 이어나갈려고 했으나 아시다시피 진나라는 2대로 멸망한다.

 

 

하나라 설명하려다가 진나라까지 와버렸네..

자..그럼 각설하고 우왕의 묘인 샤오싱 대우릉을 찾아가 보자!!

 

 

  


대우릉 입구

 

샤오싱에서 가는 방법은 맥도날도 앞 루쉰로입구(魯迅路口) 정거장에서 2번 버스를 타면 된다.

대우릉이 종점이므로 어디 내릴지 걱정 안 해도 된다.

 샤오싱 돌아다니는 방법: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262

 

역시 입장료는 50원으로 꽤 비싼편이다.

국제학생증을 보여줬지만 매표소 직원은 '이게 뭐야?' 하는 눈치다.

할인 실패..50원 다내고 들어갔다.

 

 

 

입구에서 대우릉까지는 이렇게 전동차가 운행한다.

이거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무조건 타자!!

공짜다!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면 이미 요금을 지불한 거잖아) 

 

 

 

 

산 꼭대기에 커다란 동상이 보인다.

우왕의 형상을 조각해 놓은 동상이라고 하는데

난 정말 대우릉만 둘러볼 생각이었다..근데..어쩌다 보니 저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왔다.

 

 

    

 


구정(九鼎)


하나라의 9 제후가 바친 청동을 모아 만든 9개의 솥


이때는 청동기 문화의 시작이었기 때문에

당시 청동으로 솥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변보다 엄청 앞선 문명임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며

제후들이 충성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으므로

하나라에서부터 상나라를 이어 주나라가 망할 때까지는 이 구정이 천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진시황제가 화씨지벽(당시 최고의 옥으로 완벽(完璧)과 하자(瑕疵)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으로

전국옥새를 만들게 되면서부터 황제의 상징은 옥새가 되는데

비록 망해가는 주나라라고 해도 천자의 지위로서 구정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진나라 무왕이 이를 주나라로부터 가져오려고 혼자서 이 솥을 드는 힘자랑을 하다가

그 무게를 못 이기고 들다가 다쳐서 죽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미월(중국 최초의 태후가 되는 여인)의 아들 영직이 소양왕으로 왕위를 이을 수 있게 되었고

결국 주나라를 함락하게 되어 구정을 가지고 오게 되는데 하필이면 강을 건너다 배가 전복되어 구정을 빠뜨려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뭐병


그리고 이 소양왕의 증손자가 바로 진시황제이고

(물론 진시황이 여불위의 아들이라면 소양왕의 증손자가 안 되지만 계보는 그러하다.)

천하통일을 하면서 새로운 상징으로 전국옥새를 만든 것이다.


 

  

 

 

   

  

 

  

  

  

 

대우릉 비석을 배경으로..

혼자 다니면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는 게 좀 아쉽다.

길에다 카메라 내려놓고 함 찍어봤다.

 

 

 

 

 

저 친구들..내가 사진 찍어 달라고 영어로 부탁을 하니깐 너무 당황해 하며 놀란다.

그래서 짧은 나의 중국어로 말을 붙이려 했으나 그들의 반응은 '팅부동'

그래도 내가 신기한지 계속 도와주려고는 하는데..

'곤니찌와' 이런다.

나를 일본인으로 안 모양이다.

 

 

 

 

 

 

 

 

우묘 내부를 둘러보고 옆으로 길이 있길래 뭔가 싶어 따라 올라왔는데..

그 길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다.

결국 가다보니 아까 입구에서 본 산 정상의 그 석상으로 올라가는 길인 듯한데..

이미 여기까지 걸어 올라왔는데 되돌아 가기도 그래서 끝까지 가본다.

 

 

 

이게 줌으로 땡겨 찍어서 그렇지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그나마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잠시 한숨 돌리고 사진도 찍고..

 

 

 


결국 요 사진 찍자고 여기까지 올라온 셈이다.

샤오싱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올라온 보람이 있을 듯한데

스모그 때문에 내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다.

 

 

다시 내려와서 미처 못 본 곳을 둘러봤다. 오른쪽은 우사

대우릉은 크게 우묘, 우사, 우릉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근데 여기 들어왔을 때 개가 짖어서 놀래서 줄행랑..무서월~

 

 

  

  

 

사진 속에 등장하는 저 여자는 누굴까?

보니깐 혼자 여행하던 처자였는데..그러고 보니깐 계속 나랑 겹쳐서 대우릉을 돌아보게 된다.

 

 

 

 

나올 때는 전동차를 타지 않고 걸었다.

대우릉은 황제의 능 양식을 따라 건설되었기에

이렇게 내가 황제가 된 듯, 황제만이 걸을 수 있는 황도를 따라 걷고 싶었다..

음..좋은 게 아닌가? 이건 무덤으로 가는 길이니..ㅋ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