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삼국지 유비의 무덤, 제갈량의 사당 '무후사'

Eden Choi 2013. 5. 11. 07:30

중국 청두 여행 

武侯祠

무후사

 

 

  

漢昭烈廟

한소열묘

 

무후사의 대문에는 한소열묘라고 적혀있다.

 

한나라 황족의 후예였던 유비는 촉한의 황제로서 '소열제'라는 시호를 받았는데

그가 죽자 이곳에 사당을 세우고 한소열묘 라고 하였다.

여기서 잠깐!

이곳에 유비의 무덤이 있는 것은 맞지만, 한소열묘의 묘자는 사당 묘(廟)자다.

무덤 묘자가 아님

유비는 황제였기에 그의 무덤은 혜릉(惠陵)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곳이 한소열묘나 혜릉보다 무후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까?

 

삼국지에서 유비보다 제갈량의 활약이 더 두드러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는 출사표를 던진 후 오장원에서 죽었고, 그의 유언에 따라 한중시의 면현이라는 곳에 그의 무덤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의 사당인 무후사는 당시 촉나라의 수도였던 이곳 청두의 한소열묘 옆에 세운다.

무후는 제갈량의 시호 충무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후대로 오면서 황제였던 유비보다 오히려 제갈량이 더욱 더 사람들에게 회자되다 보니

이곳의 정식 명칭이 한소열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후사라고 부른다.

 

 

 

 

 

무후사 입장권

 

입장료가 60원으로 역시 비싸다.

사진의 티켓은 국제학생증 할인을 받아서 30원짜리이다.

 

 

 

대문을 통과하고 두 번째 문을 지나면

 

 

 

유비를 모신 한소열묘가 나온다.

 

 

 

 

문신랑(文臣廊)

 

양 옆으로는 긴 회랑이 있는데 오른쪽엔 촉나라의 문신, 왼쪽에는 무장들의 모습이 진열되어 있다.

 

 

  

 

유비(劉備)

 

 

 

장비

오~ 눈 좀 보소!!

 

 

 

관우

  

관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이 많이 흔들렸는데, 

여기가 유비의 묘임에도 불구하고, 관우가 면류관을 쓰고 황제의 모습으로 있다.

 

사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관우는 상업의 신으로서

황제보다 더 높은 신으로 모셔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관우의 무덤은 황제의 '릉' 보다도 높은 '림'을 사용해서 '관림'으로 불린다.

 

 

 

 

무후사

 

유비의 한소열묘를 지나면 제갈량(공명)을 모신 무후사가 나온다.

 

 

 

 

 

 

제갈량

 

 

 

 

 

삼의묘

 

무후사를 지나면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를 상징하는 삼의묘가 나온다.

 

 

 

 

 

관우

 

이곳의 관우 모습은 앞에 한소열묘에 있던 모습과는 달리 보통 드라마의 익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

 

 

 

유비

 

 

 

 

장비

 

 

 

 

도원결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누가 유비, 관우, 장비인지 헷갈린다.

장비는 대충 알 것 같은데..

 

 

 

 

 

 

혜릉

 

이곳이 유비의 무덤인 혜릉이다.

음..사실 난 이곳이 무덤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그냥 대나무로 둘러싸인 원형의 조그만 언덕

 

듣기로는 이곳 혜릉은 유비의 진짜 무덤이 아니라고도 한다.

유비는 당시 백제성(白帝城)에서 죽었는데, 그곳에서 이곳 성도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 당시 기술로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이곳까지 옮기기에는 불가능했으리라고 보고

메이산시 펑산현 근처에서 발견된 것이 유비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이곳은 당시 촉나라의 수도였기에 가묘를 세운것이라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들은 얘기다.

 

  

  

 

 

삼의묘 뒤쪽으로 진리와 연결되는 출구가 있다.

 

여기 진리 부터는 무후사 권역이긴 해도 입장권 없이 둘러볼 수 있게 개방되어 있다.

 

 

 

유상지묘

 

음..난 앞에 혜릉이 무덤인지도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에 처음엔 이게 유비의 무덤인 줄 알았다.

이름도 유비랑 같은 '유(劉)'로 시작하잖아..ㅋ

근데, 이름을 자세히 보니 '유상'이다. 게다가 황제의 능인데 묘라고 붙였을 리도 없겠고..

근데, 유상이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다.

내가 찾은 사람이 맞다면 1930년대 쓰촨성의 주석이라고 알려져 있다.

 

 

 

 

 

 

 

 

 

 

성도 무후사

 

다시 한 번 제갈량에 대한 중국 사람들이 인식을 알 수 있게 한다.

황제의 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갈량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무후사 지도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