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얼어붙은 청나라 여름궁전 원명원 Old Summer Palace

Eden Choi 2014. 2. 12. 19:49

 

 

청화원(淸華園)

 

청화원이라고 적혀 있는 이 문은 중국 베이징의 칭화대의 구 정문이다.

지금은 칭화대 남문이 정문으로서 역할을 하지만 그래도 칭화대에 가면 다들 여기서 사진 한장 찍는다길래..

 

청화대학교는 북경대와 더불의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교이다.

의화단(義和團) 운동의 결과로 인해 중국 정부가 서구 열강에 대한 배상금 명목으로

미국 유학생 양성기관인 '칭화학당[淸華學堂]'으로 설립한 것이 그 시초이다.

 

 

 

 

그리고 여기 칭화대를 지나 서쪽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기면

청나라의 여름궁전이었던 원명원이 나온다.

 

 

 

 

중국은 뭐든지 크고 넓다. 조그만 가면 원명원이 나온다고 했는데, 물어보니 이 길 끝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헐~

그리고 이 넓은 부지가 여전히 칭화대의 일부이고..음

 

 

 

칭화따쉐(淸華大學)

 

청화대학교의 서문이다. 앞에 사진의 길을 따라 끝까지 오니 이렇게 서문이 나온다.

그리고 신호등이 있지만 대충 중국 사람들 따라 무단횡단 신공을 보이면

바로 앞에 나오는 곳이 원명원의 입구이다.

 

 

 

 

원명원의 남쪽 출입구

 

이 사진 바로 왼쪽에 지하철 4호선 원명원역이므로, 칭화대 방문없이 원명원에 갈 생각이면 처음부터 지하철을 이용하면 된다.

 

 

 

 

원명원의 전체 모습

 

 

 

원명원 지도(클릭하면 커짐)

 

 

우리가 보통 원명원이라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원명원, 장춘원, 그리고 기춘원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실제 원명원 지역은 거의다 파괴되어 폐허로만 남아 일반인에게는 개방이 안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원명원 사진으로 많이 나오는 서양루의 모습은 위 지도속 원명원이 아니라 장춘원 북쪽에 있다.

 

여름철에 방문한다면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서양루까지 갈 수 있으므로 배를 타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원명원 지역까지 다 둘러볼려면 위 지도의 빨간색 라인을 운행하는 전동차를 타는 것이 좋다.

난 무조건 걸어서 둘러보는 스타일인데도 이렇게 전동차를 권하는 것은 원명원을 걸어서 보다가 기차 놓쳤다. ㅠㅠ

 

 

 

 

 

내가 돌아본 코스

 

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므로 기춘원 남문 입구에서 시작해서 다시 남문으로 돌아오는 코스인데,

이렇게만 둘러보는데도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결국 난 원명원에 가서 실제 원명원 지역은 보지도 못하고 온 셈이다. 

 

 

 

 

 

기춘원에 들어가서 처음 만난 정자

 

 

 

 

정원의 호수는 꽁꽁 얼어붙어 사람이 걷고 있다.

 

 

 

 

 

 

잔교(残桥)

 

원명원의 전성기때에는 거의 200개에 가까운 다리가 있었다는 하는데, 다 파괴되고 이것이 유일하게 남은 당시의 다리라고 한다.

 

 

 

 

원명원이 이렇게 파괴된 것은 제2차 아편 전쟁(애로호전쟁)때문이다.

 

1차 아편전쟁으로 영국의 중국 침탈을 더욱 호시탐탐 노리던 중,

1856년 10월 광저우 앞 주강(珠江)에 정박하고 있던 해적선 애로호의 영국 국기가 바다에 버려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또한 중국에서 불법적인 포교활동을 하고 있던 프랑스 선교사를 처형한 사건이 생기자 이것을 구실로

1857년 영국은 프랑스와 연합군을 구성해 광저우 시내로 침입하여 이 해 12월, 광저우는 점령되고 시가지 곳곳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을 학살한다.

이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1858년 북상하여 북경의 관문인 톈진까지 점령하자 청나라는 어쩔 수 없이 톈진조약을 맺었음에도

이윽고 영프 연합군은 그해 10월에 베이징에 입성하고, 베이징에 머무는 과정에서 수많은 약탈과 방화를 자행한다.

이때 연합군은 청나라의 여름궁전인 원명원으로 쳐들어가서 그 안의 온갖 진귀한 것을 약탈하고, 원명원을 파괴시킨다.

이후에도 의화단 운동에 의해 다시 한번 베이징이 함락되면서 원명원은 철저히 파괴되고 폐허가 되고 만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때 중국의 황제는 함풍제였다.

 

 

 

함풍제(咸豊帝)

청나라 제9대 황제(재위 1850-1861년)

휘는 혁저(奕詝)이며, 묘호는 문종(文宗)이다.

재위기간 중에 홍수전(洪秀全)의 태평천국(太平天國) 운동이 일어나 중국 대륙이 휘청거렸다.

1856년 이후 영국-프랑스와의 제2차아편전쟁(애로호 전쟁)이 격화되어 1860년 함풍제는 열하(熱河)로 피난을 갔다.

그 사이 영-프 연합군의 공세가 베이징까지 이르러 이궁(離宮) 원명원(圓明園)이 전소(全燒)되었다.

이후 함풍제는 자금성으로 돌아와 1861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후궁중 한명으로 유일하게 그의 혈육을 남긴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서태후'이다.

함풍제 이후로 정권은 바로 서태후의 손에 들어갔고, 결국 그녀가 죽자 청나라도 함께 망한다.

 

 

 

서태후(西太后)의 생전 모습

나의 서태후 지하궁전 방문기

 

 

서태후는 원명원이 파괴되자 새로 여름궁전을 짓는데, 그것이 원명원 서쪽의 이화원이다.

이화원 조성 비용은 당시 군함을 만들 돈이었다고 하는데, 이 뭐..

결국 그녀는 죽을때 '다시는 여자가 정치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나 어쨌다나~

 

 

 

 

 

이게 황실의 정원이라고 하지만 연못이라기 보다 호수 규모다.

 

원명원은 1707년(강희48년), 청조 4대 황제 강희제가 황태자 윤에 하사한 정원이 그 기원이다.

윤이 옹정제로 즉위한 이후 1725년(옹정 3년) 여러 건물이 증축되었고, 정원도 확장되었다.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은 이 옹정제와의 만남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옹정제에 이은 건륭제 시대에는 원명원의 동쪽에 장춘원(長春園), 남동쪽에 기춘원(綺春園)이 건설되었다.

중국 청나라의 최고 전성기는 이 원명원이 전성기와 때를 같이해 강희제-옹정제-건륭제 이 3명의 황제이고 이후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강희제(康熙帝)

청나라 제4대 황제(재위 1661년 ~ 1722년)

성은 애신각라(愛新覺羅), 휘는 현엽(玄燁) 또한 만주어로는 얼허 타이핀 한(Elhe Taifin Han)

몽골어로는 엔크 암갈란 칸(Enkh Amgalan Khaa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묘호는 성조(聖祖), 시호는 합천홍운문무예철공검관유효경성신중화공덕대성인황제(合天弘運文武睿哲恭儉寬裕孝敬誠信中和功德大成仁皇帝)

짧은 시호로는 인황제(仁皇帝)이다. 연호는 강희(康熙)이다.

제3대 황제인 순치제(順治帝)의 셋째 아들이자 순치제의 후궁 출신인 효강장황후 동가씨(孝康章皇后 佟佳氏)의 소생으로서

자금성(紫禁城)에서 태어난 최초의 청나라 황제이다.

산해관 입관(入關) 이후 중원을 통일한 황조로서는 두번째 황제이기도 하다.

청나라의 강건성세를 열은 황제로서 한족이 아닌 이민족 황제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황제들 중 한명이다.

또한 61년간의 재위기간으로 최장수 재위기간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나의 강희제릉 방문기

 

 

 

 

옹정제(雍正帝)

청나라의 제5대 황제(재위 1722-1735년)

휘는 윤진(胤禛), 묘호는 세종(世宗)

시호는 경천창운건중표정문무영명관인신의예성대효지성헌황제(敬天昌運建中表正文武英明寬仁信毅睿聖大孝至誠憲皇帝)

짧은 시호로는 헌황제(憲皇帝)이며, 연호는 옹정(雍正)이다.

또한 만주어로는 후왈리야순 톱 한(Hūwaliyasun Tob Han) 몽골어로는 나이랄트 퇴브 칸(Nairalt Töv Khaan)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의 넷째 아들이며 강희제의 후궁 출신인 효공인황후 오아씨(孝恭仁皇后 烏雅氏)의 소생이다.

순치제부터 청동릉에 황릉을 만든 관례에 따라 그도 청동릉에 황릉을 만들어야했지만,

황릉 조성중 물이 샌다하여 그는 청동릉의 능묘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청서릉에 다시 능묘를 조성하는데, 그래서 각각 베이징의 동과 서에 위치한다고 청동릉, 청서릉 이렇게 명명된다.

문제는 옹정제가 아버지를 따라 묻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 황제인 건륭제는 황릉을 어디에 조성하는가가 골칫거리가 되었다.

결국 내린 해법이 건륭제 자신은 청동릉에 묻히지만 그 다음 황제는 청서릉에 이렇게 교대로 능을 조성하기로 결정.

 현재 북경의 옹화궁은 옹정제가 왕자 시절에 기거하던 곳이다.

나의 옹화궁 방문기 :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584

 

 

 

 

건륭제(乾隆帝)

청나라 제6대 황제(재위 1735-1796년)

어릴 때부터 제왕으로서의 자질이 보여 할아버지 강희제와 아버지 옹정제에게 인정을 받았다.

1735년(옹정 13년), 옹정제가 급사하자 저위비건법에 따라 황위에 올라

먼저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갈등을 조정하며 내치를 다진 후 대규모 정복 사업과 문화 사업을 펼쳤다.

또한 10차례에 걸친 정복 사업을 펼쳐 준가르와 위구르를 복속시키고 티베트, 버마, 베트남, 네팔까지 진출하는 등 현재 중국 영토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내놓고 여기에 사치, 반란, 서방과의 부실한 외교,

그리고 희대의 탐관오리로 평가받는 화신을 20여년간 총애하여 말년엔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빈번히 일어나고

국고가 비어 결국 청나라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795년(건륭 60년) 말, 자신은 감히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재위 기간을 넘을 수 없다며 재위 60년째에 태상황제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정책 최고 결정권을 행사하여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었다.

재위기간 60년에 태상황제로서 실권을 장악한 4년까지 합치면 건륭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실권을 장악한 황제였다.

스스로를 십전노인(十全老人, 열 번의 원정을 모두 승리로 이끈 노인)이라 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하였으며,

중국 최후의 태평성세인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마지막을 장식한 황제이다.

 

 나의 건륭제릉 방문기

 

 

 

 

 

 

한국 같으면 엄마가 밀고 아이가 썰매를 탈텐데..여긴 엄마가 타고 아이가 민다.

 

 

 

 

원명원 12지신 두상 전시

 

 

 

 

12지신 두상이 이렇게 전시되어 있는데,

이 12지상은 장춘원 서양루 지역의 해안당(海晏堂) 분수 앞에 있던 청동상으로

영-프 연합군이 원명원을 침탈해서 뺏어간 것이라고 한다.

이 중 8개는 중국 부호가 다시 사들여 중국 정부에 반환했으나 아직 4점은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2009년 프랑스의 이브생로랑과 그의 파트너 피에르 베아제의 수집품 경매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2점이 경매로 나와 중국 정부의 신경을 건드렸다고 하는데, 여전히 나머지 동상은 반환되지 못한 듯 하다.

 

 

 

 

 

 

 

드디어 서양루 지역

 

역시나 여기는 따로 돈을 받는다. 그래서 저렇게 철조망으로 막혀져 있는 것

원명원 들어올때 통표를 사면 여기가 포함되어 있다.

통표: 성인 25위엔 (입장권 10위엔 + 서양루 15위엔)

 

 

 

여전히 파괴된 그때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개박살을 내놓고 갔을까?

영프 놈들 대다나다.

 

 

 

 

 

황화진

 

그나마 원명원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유적이 아닐까 싶다.

여기 황화진은 미로로 된 미궁인데..

별것 아닌것 같았는데, 막상 저 가운데까지 갈려고 하니깐 길이 진짜 미로다.

 

 

 

몇번만 돌아가면 가운데 정자까지 문제 없이 갈 것 같았는데, 가다보면 길이 막히고,

또 가다보며 길이 막히고..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들 헷갈려한다.

 

 

 

결국 다람쥐 체바퀴 돌듯 빙빙 헤매기만 하다가..

 

 

 

담치기..ㅋ

 

도대체 길이 있기는 있는 것이야?

 

 

 

 

 

 

해안당

 

아까 오면서 본 12지상이 원래 있던 자리이다.

 

 

 

철조망을 해놓은 것을 봐서는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것 같은데,

중국인들은 별 꺼림낌 없이 들어간다.

 

 

 

파괴되기 전 해안당 모습의 그림

 

 

  

 

 

대수법

 

이곳 역시 인공 분수가 있던 대형 정원이라고 한다.

 

 

 

아씨..사진좀 찍을려고 하면 내 앞을 가로막는 커플들..ㅆ

 

 

 

관수법

 

대수법의 맞은편에 있는 곳으로 황제가 여기서 분수를 관람했다고 한다.

 

 

 

 

서양루를 다 둘러보고 다시 돌아나오는데, 흑고니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흑고니의 발길짓 때문인지 유일하게 여기만 얼지 않았다.

 

 

 

 

 

 

 

아..넓다 넓어..여기는 전동차가 운행하는 구간인데, 너무 늦었는지 이젠 관광객조차 안보인다.

결국 멀어도 너무 멀었던 원명원 구경 때문에 이날 밤기차를 놓치고..

앞으로 중국 사람들이 가깝다고 하면 최소 1시간은 생각하시라!!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