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황하문명의 시작 하나라 우왕의 맹문산

Eden Choi 2017. 4. 27. 07:59


황하문명 최초의 왕조

하(夏)나라



황하 호구폭포


칭하이성 쿤룬산맥에서 발원한 황하는 황토고원을 지나면서 글자그대로 황하가 된다.

하지만 황하문명이 발원할 시기의 황토고원은  지금 사진에서 보듯 척박한 땅이 아니라

초목이 우거지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땅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황하문명이 번성하여 인구가 늘어날 수록 숲의 파괴가 심해져 지금처럼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진시황 이후 중국 역사의 중심지도 서안에서 후대로 갈수록 계속 동쪽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지금의 북경이 중국의 중심이 된 것은 몽골이 지배한 원나라 때부터다.




호구폭포에서 본 황하



중국 역사를 보면 삼황오제부터 시작되지만 신화이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기록에 의한 최초의 왕조는 하나라 때부터로 본다.

(기원전 약 2070년 - 기원전 약 1600년)


우(禹)임금은 이 하나라를 세운 최초의 군주이다.


치수(治水)


우가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치수를 잘해서 가능했는데

고대 중국에서 치수란 강을 범람을 막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강을 '수'라고 했다. 그래서 낙수, 패수, 살수 등등..


그리고 이 우임금의 치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혹구폭포 아래에 있는 맹문산(孟門山)이다.




맹문산


맹문산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산이 아니라 섬이다.


이때에 치수라는 것은 주로 제방을 쌓아 강의 범람을 막는 것이었지만

당시 기술로 만든 제방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우임금은 섬을 갈라 물길을 냄으로써 제방의 한계를 극복해 냈다.

그래서 현재 중국인들은 이곳에 우임금의 석상을 세워 기념하고 있으며, 그를 대우(大禹)라고 부른다.


결국 이 치수를 잘 하여 나라를 세우게 되고 그의 아들이 왕위를 이으면서

중국 최초의 세습왕조로 17대가 이어졌다.




맹문산의 우임금


우임금은 죽어서 지금의 소흥(샤오싱)에 묻혔는데, 그래서 소흥에 우임금의 가묘인 대우릉이 있다.

당시 하나라의 영토가 소흥까지 미치지 못하는데 왜 거기까지 가서 죽었을까?


나의 대우릉 방문기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263





대우릉에서 본 구정(九鼎)


구정은 하나라의 9 제후가 바친 청동을 모아 만든 9개의 솥을 말한다.


이 때는 청동기 문화의 시작으로써

당시 청동으로 솥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앞선 문명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후 상나라에 이어 주나라 천자까지 이 구정을 대대로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진시황제가 화씨벽으로 옥새를 만들기 전까지는 이 구정이 중국 천자의 상징이었다.



아래는 호구폭포에 전시된 황하 사진

 












호구폭포에서 찍은 영상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