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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공략 건륭제와 여인들의 무덤에 직접 가 보다. 청동릉 유릉과 유비원침

Eden Choi 2019. 11. 10. 05:35

연희공략(延禧攻略)

 

 

건륭황제의 여인들

 

그들이 잠든 건륭제의 유릉과 유비원침에 가 보았다.

 

 

 

청동릉 지도

 

지도에 빨간색 표시한 곳이 건륭제의 유릉과 그의 후궁들이 묻힌 유비원침이다.

 

중국 청나라의 황릉은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에 수도를 정한 후부터는

여기 청동릉에 황릉을 조성하였지만

옹정제(후궁 견환전에 나오는 황제로서 연희공략 건륭제의 아버지)가 본인의 황릉을 따로 베이징 서쪽에 조성하면서

청동릉과 청서릉으로 이름 붙고 각각 황제가 교대로 묻히게 되었다.

 

 

 

황릉으로 들어가는 길

 

청동릉 영역이 엄청나게 넓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1km 이상 더 가야 실제 건륭제의 유릉에 도달할 수 있다.

 

 

 

건륭제 유릉에 도착, 사진 속 전각은 유릉을 표시하는 비각

 

 

연희공략의 건륭제 배우는 섭원(Nie Yuan)이다.

 

 

실제 건륭제의 초상이다.

베이징 천단에 갔을 때 찍은 초상화로 젊었을 때의 건륭제는 중국 배우와 약간 닮은 것 같기도..

본명은 애신각라 홍력(愛新覺羅 弘曆)

 

 

 

융은전(隆恩殿)

 

명,청 시대 황릉에 조성된 곳으로 제를 지내는 곳이다.

그리고 이 융은전을 지나고 나면

실제 황제의 시신이 묻힌 지궁(지하궁전)이 나온다.

 

 

유릉 지궁의 입구

 

 

 

건륭제의 지하궁전은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무덤이라 그런지 들어오자마자 확실히 싸늘하고 음침하다.

더운 바깥 날씨에 비해 오싹할 정도

 

 

 

이것이 건륭제의 관이다.

 

 

 

부서진 석관

 

건륭제의 유릉에는 2명의 황후 (효현순황후, 효의순황후)와

3명의 황귀비 (혜현황귀비, 철민황귀비, 숙가황귀비)가 함께 안장되어 있다.

 

 

 

효의순황후(孝儀純皇后) 관이 있던 자리

 

사진 앞에 효의황후라고 적혀 있지만 이미 관은 도난 당하고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효의황후가 바로 연희공략의 위영락이다.

(위영락은 드라마 속 이름이고 실제 역사에서는 위씨라는 것만 나오고 이름은 모름)

위영락! 결국 황후도 되고 건륭제와 죽어서도 같이 있고..성공했네!

 

 

 

연희공략 마지막회 황귀비가 된 위영락

 

사실 위영락은 살아 생전에는 황후가 되지 못했으나 그녀의 아들(가경제)이 황위를 이으면서

사후에 효의순황후로 추존되었다.

 

 

건륭제와 황귀비가 된 위영락

 

 

 

효현순황후(孝賢純皇后)

 

연희공략에서 부찰 가문의 황후로 나오는 효현순황후의 모습

실제 역사에서도 건륭제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나오며 어진 황후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연희공략에서처럼 자살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두 번째 아들마저 어린 나이에 죽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병에 걸렸고

 이에 건륭제는 그녀를 위해 동부 지방 여행(동순)을 떠났다가

병으로 죽었다고 청나라 공식 기록에는 나와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중에 (운하를 따라 배로 이동했음)

건륭제가 술에 취하자 효현황후가 말리는 와중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심지어 분노한 황제가 물에 던져서 죽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여하튼 구글에서 효현순황후 사인(孝賢純皇后 死因)이라고 검색해 보니 

'병사'가 아니라 '익사'라고 나오는 것을 봐서는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연희공략, 비빈들을 맞이한 효의황후

 

 

 

혜현황귀비(慧賢皇貴妃)

 

연희공략에서 초반부터 악독하게 나오는 고귀비이다.

난 저 고귀비의 무표정이 참 좋다.ㅋ

성이 고씨라서 고귀비라고 하며 귀비는 황귀비 바로 아래 단계이다.

 

연희공략에서는 나쁘게 묘사되었지만 건륭제와 한 무덤을 썼다는 것은

실제 역사에서는 황제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 기록에도 그녀는 부찰 황후(효현순황후)와 잘 지내며 건륭제를 보필했고

30살 초반에 병이 들자 건륭제는 그녀를 안타깝게 여겨 황귀비에 봉했는데 그 다음날 사망했다.

 

 

 

 

숙가황귀비(淑嘉皇貴妃)

 

청나라가 망하면서 청나라 황릉은 거의 다 도굴당했기에

남아 있는 관들이 제대로 없지만 다행히 숙가황귀비의 관은 남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숙가황귀비는 조선인 출신으로
원래 성씨는 김씨(金氏)이고

상사원경의 삼보의 딸이자 예부상서 금간(金简, 만주어:긴기얀)의 여동생이라고 나온다.

생전에는 가귀비로 불렸는데..

'가귀비'로 불렸다는 것에 조사를 해 보니 연희공략에서는 '가빈'으로 나왔다.

조선인 출신인데 나쁘게 나와서 좀 아쉽다.


 

숙가황귀비 (연희공략의 가빈)

 

연희공략에서는 악역으로 나오지만

위영락(효의순황후)과 함께 황제의 능에 합장된 것만 봐도

연희공략에서처럼 나쁘게 최후를 맞이한 것은 아니고

그녀의 아들이 황위 계승자 명단에 들 정도로 권력에서 밀려난 것도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 그녀는 병사했으며 건륭제는 그녀 사후 이틀 뒤에 황귀비에 추서했다.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선의 공녀로 간 그녀를 마냥 싫어할 수 없는 캐릭터인데

드라마에서는 조선인이란 얘기가 언급되지는 않았다.

 

추가 내용

숙가황귀비가 조선의 공녀 출신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그녀의 가문은 정묘호란 때

여진족(청나라 건국 후 만주족으로 이름 바꿈)에 끌려갔던 의주 출신 조선인이었으며

이후에도 조선인으로 구성된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며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그녀의 증조부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고

증조모가 순치제의 유모가 되면서 청나라 중앙정계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숙가황귀비 가문이 완전히 만주족으로 된 것은

그녀 사후에 가경제가 만주 성씨를 하사한 이후이기 때문에

숙가황귀비 생전에는 조선인 출신으로 분류되었다.

 

 

지궁을 나와 뒤로 가면 무덤의 봉분 위로 올라갈 수 있게 길이 나있다.

 

 

 

황릉 위에서 바라본 융은전

우리는 왕릉의 봉분이 흙인데 여긴 성벽으로 둘러싸여 거대한 언덕처럼 되어 있다.

역시 대륙의 클래스

 

 

건륭제의 유릉을 나와

이제 건륭제의 후궁들이 안장되어 있는 유비원침으로 이동했다.

 

 

 

유비원침(裕妃園寢)

 

황제의 능에만 황금색 기와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유비원침의 기와는 청록색을 띠고 있다.

 

 

 

 

유비원침의 지궁

 

 

 

옆에 이런 작은 무덤들이 있는데 모두 건륭제 후궁들의 무덤으로

총 36명이 안장되어 있다.

 

 

 

 

이 무덤들 중 하나에 몸에서 향이 난다고 한 향비가 묻혀져 있다.

다만 ㅇ나내 표지판이 없어 어느 무덤인지는 확인을 못 했다.

 

향비(香妃)는 원래 중앙 아시아 야르칸드 족장의 미망인이었다고 한다.
1759년 청군이 야르칸드를 점령했을 때 베이징으로 압송되었다.

건륭제는 그녀를 총애하여 온갖 정성을 쏟았고 환심을 사려고

작은 모스크와 이슬람식 방을 짓도록 했지만  향비는 끝내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2년 뒤 건륭제의 어머니인 숭경황태후(후궁 견환전에서의 견환의 모델이다)가

건륭제가 없는 틈을 타서 그녀가 자결하도록 했다.

이에 건륭제가 그녀를 불쌍히 여겨 시신을 운구에 태워 3년에 걸쳐 고향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카슈가르에는

아팍호자(阿巴加墓)라고 불리는 향비묘(정확하게는 아팍호자 집안 가족묘)가 있다.

하지만 중국측 기록에 의하면

건륭제의 후궁들 중에 향비라는 이름은 없고 다만 위구르 출신의 용비(容妃)를 향비로 보고 있는데

그녀는 건륭제의 총애를 받다가 55세에 병사했고 이곳 유비원침에 묻혔다고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향비의 무덤은 이곳 청동릉과 카슈가르 2곳에 있다.

 

연희공략에서는 순빈으로 나왔는데 위구르 출신이 악역으로 나오면 위구르족과 문제가 될 것을 염려하여

작중에서의 이름도 용비에서 순빈으로 바꾸고 만주족인 것으로 나온다.

 

 

 

향비(용비)를 모티브로 한 순빈

 

 

숭경황태후(崇慶皇太后)

 

연희공략에서 태후로 나오며 옹정제의 후궁이자 건륭제의 생모이다.

연희공략에서는 그녀가 생모가 아닌 것으로 나오지만 역사 기록에는 생모라고 나와있다.

그녀는 건륭제의 어머니로 황태후는 되었지만 원래 황후는 아니었기에

후에 건륭제가 효성헌황후(孝聖憲皇后)로 추존하였다.


또한 연희공략에서 숭경황태후는 후궁 견환전에서 주인공 '견환'이기도 하다.

그 엄청난 후궁 암투를 다 이겨내고

아들이 황제가 된 뒤로는 정말 편하게 잘 살다가 84세로 생을 마감했다.

 

옹정제는 청서릉에 장사를 지냈기에

그녀의 무덤도 옹정제의 태릉에 있어서 여기 청동릉에서는 볼 수가 없다.

기회가 되면 청서릉에도 찾아가 보고 싶다.

 

 

유비원침의 지궁 입구

이곳도 지궁 내부로 들어갈 수 있어서 들어가 봤다.

 

 

 

유비원침 지궁 내부

이곳은 관리가 잘 안 되어 습기가 상당했다.

 

 

 

사진 오른쪽의 관에는 황후라고 적혀져 있다. 뭐지?

왜 황후가 후궁의 능묘에 있는 것인가?

 

찾아보니 이 황후의 관은 계황후(繼皇后) 휘발나랍씨(烏拉羅拉氏)로

그녀의 마지막 봉호는 한황귀비(嫻皇貴妃)였다.

그녀는 건륭제의 두 번째 황후로 한비에서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건륭제의 미움을 사

황후였음에도 시호를 받지 못하고

황귀비의 예를 장례를 치러서 이곳에 묻히게 된 것이다.

연희공략에서는 한비로 나온 인물이다.

후궁 여의전에서 주인공 여의가 바로 이 한비이기도 하다.

 

 

연희공략 한비

 

 

황후가 되었으나 황제의 미움을 사 머리카락을 자른 장면

(황제에게 분노하여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얘기는 실제 기록에 나온다)

 

그녀가 왜 황후에서 쫒겨났는지는 정확한 역사적 기록은 없으나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그녀의 얘기가 언급되는데

향비로 추측되는 후궁의 모함으로 쫒겨났다고 되어 있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향비가 아니라

바로 영귀비(연희공략에서 위영락)와의 태자 책봉 문제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여하튼 둘 다 다른 후궁과의 권력 암투가 원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청나라 기록에는 황제와 함께 항주로 남순을 할 때까지 딱히 사이가 안 좋거나 한 그런 내용은 없다고 한다.

남순에서 갑자기 일이 생겨 황후만 베이징으로 돌아간 것은 실제한 기록이다.

그래서 후궁 여의전에서는 연희공략과는 반대로 그녀를 비운의 여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황후 옆의 관은 순혜황귀비의 관이다.

 

 순혜황귀비(純惠皇貴妃) 소씨(蘇氏)

 

연희공략에서 순비로 나온다.

초반에 황후를 돕는 착한 여인으로 나오다가 남자 때문에 흑화한다.

 

 

부찰 부항(富察 傅恒)

 

부찰 황후의 남동생으로 순비는 그에게 홀딱 빠져 황후를 도왔는데

알고 보니 그는 순비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위영락을 사랑하고 있으니..

 

그러면서 위영락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죽으면서 이렇게 전달했다.

 "영락... 난 한 평생 너를 지켰어, 다음 생엔 네가 나를 지켜줄래?"

 

 

연희공략 위영락과 부찰부항의 첫만남

 

 

부찰부항 역을 맡은 배우 허개는 이 연희공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실제 여친을 패는 사건이 있어서 인성은 좀..

 

 

 

부찰부항과 위영락

 

황제를 놔 두고 둘이서 이래도 되는 거?

연희공략에서는 황후의 시녀 이청과 결혼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부찰부항은 예허나라씨와 결혼하여 4남 2녀를 두고

아주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

 

 

 

유비원침 지궁을 빠져 나오며..

한 많은 여인들의 무덤이라 그런지 씁쓸한 기운이 계속 맴 도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이든의 배낭기 

 

나의 운남성 여행 여강고성-옥룡설산-호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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