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Vietnam

황릉을 찾아서.. 민망황제릉 베트남 훼 여행

Eden Choi 2012. 4. 22. 02:39

 

베트남 여행 민망황제릉

 

베트남 여행은 지난 여름에 갔다왔는데 이제서야 다시 글을 이어간다

그 사이 일본과 대만을 갔다오는 바람에

그 이야기를 먼저 적다 보니 베트남 여행기가 잠시 중단

개인적으로 난 이 베트남 훼 여행이 무척 좋았다.

내가 좋아라 하는 황릉을 구경할 수 있었거든

이상하게 난 무덤 구경하는게 좋다. 그래서 중국 가서도 청나라 황릉을 그렇게 찾아다녔고..ㅋ

 

 

베트남 훼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 응우옌 왕조 수도로서 역대 황제들의 능이 향강을 따라 위치하고 있다.

지금 찾아가는 곳은 제2대 황제 민망황제의 능이다.

 

 

 

 

민망황제릉으로 들어가는 길

 

 

 

 

 

민망황제릉의 입구는 정문인 다이홍몬(Dai Hong Mon 大紅門)이 아니라

들어가는 쪽에서 보면 오른쪽에 위치한 따홍몬(Ta Hong Mon 左紅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티켓도 여기에서 구입한다.

 

입장료 : 55,000동

국제학생증 할인은 되지 않았다.

 

 

 

 

좌홍문

 

 

 

 

황릉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

 

응옌왕조는 중국 양식을 선호했기 때문에 황릉의 구조도 중국과 비슷하다.

게다가 베트남은 비록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았지만

조선과 달리 황제국을 칭했고, 그래서 무덤도 왕릉이 아니라 황릉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홍문(Dai Hong Mon 大紅門)

 

이것이 황릉의 정문인 다이홍몬, 하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석인상을 지나고 나면 황제의 공덕을 새긴 공덕비가 새긴 비각이 나온다.

 

청나라 황릉인 청동릉에 갔을때 이 석인상에서 신도를 지나 실제 황릉 지궁까지는 무려 수십km 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베트남의 황릉도 전체 면적은 상당하다.

 

 

 

  

  

 

 

 

비각안에는 민망황제의 아들인 티에우찌(소치제)가 세운 공덕비가 있다.

 

 

 

비각을 지나고 나오면 황제의 황후의 위패를 모신 숭은전이 나온다.

 

 

 

 

 

숭은전

디엔숭안 (Dien Sung An 崇恩殿)

 

 

 

숭은전 내부

 

 

 

 

민망(Minh Mang 明命)황제

1791년 5월 25일 ~ 1841년 1월 20일

베트남 대월국 응우옌 왕조의 제2대 황제(재위 : 1820년 ~ 1841년)이다. 

초대 황제인 가륭제의 넷째 아들이다.

재위 기간에 사용했던 연호가 통칭이 되어 명명제(明命帝)라고 부른다.


 

 

민망황제때 응우옌 왕조 건국때의 국호인 월남(越南, 베트남)을 대남(大南)으로 바꾸었다.

대외적으로는 쇄국적인 자세를 보였고, 점차 프랑스 사람에 대한 우대조치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1826년에는 개국을 요구하는 프랑스 군함의 함장과의 접견을 거부하고, 1826년에는 역시 건국 때의 공적자인 프랑스인 쇼니의 조카가 영사자격으로 순방을 해왔지만 이것마저 거부해, 베트남과 프랑스의 공식관계는 한동안 중단되었다. 캄보디아로 군사 원정을 실시하여 실패에 끝나지만, 주변의 모든 세력에게 충분한 위협을 주었다. 더욱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에 대한 통제 강화를 도모하였다. 내정에는 중국식 중앙집권화를 진행시켜 베트남 각지에 성(省)과 현(縣)을 설치하였다. 관리 등용에 대해서는, 건국 당초보다 행해지고 있던 과거에 전시(殿試)를 추가 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각지에서 반란을 부르고 동시에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동기가 되어, 1836년에는 유럽으로부터 파견된 선교사 7명을 처형을 하고 동시에 기독교 신자 다수를 탄압을 하였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산악 지대로 피하게 되었다. 결국 훗날 프랑스-에스파냐 연합군의 침공과 프랑스가 베트남의 이권을 장악하는 맹아가 된다.

 

내용출처 : 위키피디아

 

 

 

숭은전을 지나면 명루가 나온다.

 

 

 

민라우(Minh Lau 明樓)

 

역시나 이 가운데 길은 황제만이 지나가던 길

하지만 이제는 나도 이길을 따라..

 

  

 

 

명루에서 바라본 숭은전

 

 

 

 

드디어 황릉의 봉분이 나온다.

 

청나라 황릉의 경우 지하궁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여기도 혹시나 기대를 해봤는데

더이상 내부로 들어갈 수 있지는 않았다.

 

황릉의 양식은 대부분 중국을 따라지만 차이점은 연못이 해자처럼 능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정대광명 正大光明

 

'언행이 떳떳하고 바르다'는 뜻으로 황제들의 통치이념으로 많이 삼았다.

특히 요즘 내가 중국 드라마 보보경심에 빠져 있다 보니 이 정대광명이란 글씨를 자주 보게 되는데

 

자금성내 황제의 거처인 건청궁 편액이 바로 이 정대광명이다.

 

 

 

베이징의 자금성 관람시 찍은 건청궁의 정대광명

 


저위비건법(儲位秘建法)

 

명나라와는 달리 청나라의 후계자 선출 방식으로 적장자가 아닌 능력이 뛰어난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보보경심 드라마에서 보듯이

강희제는 둘째 아들 윤잉을 어릴때 황태자로 세워 만주족의 후계 방식을 따르지 않았는데

문제는 황태자 윤잉이 비행을 일으켜 결국 폐위하게 되고 다시 저위비건법으로 후계자를 선출하게 된다.

이때 황제는 유조를 적어 건청궁의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쪽에 놓아두었는데

사후 확인을 하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4황자 윤진이 황위를 이어 옹정제가 된다.

하지만 이 유조가 조작되었다는 의문이 많았다.

 

즉, 강희제의 유조가

 

‘14황자 윤제에게 물려준다.’(傳位十四皇子)에서 ‘4황자 윤진에게 물려준다.’(傳位于四皇子)

 

로 고쳤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후대에 옹정제는

 정대광명 편액 뒤에 봉인된 교지 외에 또 하나의 밀지를 적어 내무부에 보관하고 이 두 밀지가 모두 맞아야 황위를 승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바꾸었다.

 

정명광대 앞에서 보보경심 출연진들

 

민망황제릉 얘기하다가 갑자기 중국드라마로 잠시 이야기가 빠졌네..ㅋ

드라마가 중국 역사 공부 무지하게 만든다는..

 

 

강희제 경릉 바로가기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568

 

 

  

 

황릉의 봉분은 마치 하나의 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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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지도로 본 민망황제릉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은 뜨득황제릉

 

To be continued

 

이든의 배낭기 Eden @ Wilshire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