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중국 역사상 유일 여황제 측천무후 건릉(乾陵)

Eden Choi 2012. 12. 15. 04:49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릉

건릉(乾陵)

 

 

 

 

건릉 가는 길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중국!

드넓은 평야에 저렇게 끝도 없는 고가다리가 인상적이다.

 

측천무후의 무덤인 건릉은 서안에서 서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있다.

 나는 한나라 무제의 무릉, 측천무후의 건릉, 의덕태자묘, 그리고 법문사 이렇게 둘러보는 1일 투어를 신청해서 갔다왔다.

모두 서안에서 제법 거리가 있고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불편한 곳이 많아서

투어를 신청하는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투어요금은 상자문 호스텔에서 300원(입장료 포함, 무릉은 옵션으로 입장료 40원 별도)에 신청했다.

다른 데서 알아본 바로는 이 투어가 500원이 넘었는데 여긴 예상보다 많이 저렴해서 바로 결정

그러나 중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어라서 영어도 안 되고 외국인은 나밖에 없다.

중간에 무릉박물관이 옵션인줄 몰랐던 나는 말이 안 통해서 한참을 옥신각신..ㅋ

다행히 이날 영어가 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있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했다.

뭐 말이 안 통해서 처음에 답답하긴 했지만 그 바람에 중국인 여행객들과 쉽게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나쁠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이 가격에 1일 투어를 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고 전반적으로 투어는 괜찮았다.

 

 

 

 

 

건릉 앞은 전부 이러한 계곡과 벌판이 쭉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 넓은 벌판에 산이 하나 덩그러니 있는데 그게 바로 건릉이다.

 

명나라 황릉과 청나라 황릉에는 이미 가보았지만 크다고 해도 산은 아니었다.

황릉의 면적은 더 넓은지 몰라도 명.청의 능은 봉분을 만들었기 때문에 무덤의 형태가 눈에 보이는데

당나라의 황릉은 기존의 산에다 구멍을 내어 지궁을 만들어 황릉을 만들었기 때문에 진짜 산이 하나의 능이 된 셈이다.

 

 

 

 

산이 무덤이 된 건릉

 

 

 

건릉의 신도

 

명13릉과 청동릉에 봤던 황릉처럼 건릉도 이렇게 신도를 통해 이어져 있다.

양쪽에는 동물들 석물이 세워져 있고, 좀 더 가면 문인석과 무인석이 나열되어 있다.

 

 

 

 

 

 

주작문(朱雀門)

 

 

양쪽으로 있는 건축물이 주작문이고 그 사이로 보이는 산이 건릉이다.

 

건릉은 당나라 제3대 황제 고종 이치와 그의 부인 측천무후의 합장릉으로

황제와 황후의 무덤을 따로 하는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이다.

그리고 측천무후는 후에 주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성신황제에 올라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다.

(정확히 따지면 유일한 여황제는 아니다. 북위에서 하루만에 폐위된 여황제 원고랑이 있다.)

 

 

則天武后

측천무후

 

무측천은 원래 당태종의 후궁으로 들어갔지만 태종 보다는 아들인 고종의 눈에 띄어

결국 태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자 고종의 후궁이 된다.

뭐 이쯤 되면 뻔한 스토리

당근 고종의 황후를 내쫒고 그녀가 황후가 되어야겠지~ 실제 역사도 그렇게 된다.

그녀는 황후를 내쫒기 위해 자기 딸(안정공주)을 일부러 죽였다는 얘기도 있다.

그녀가 딸을 낳았을 때 황후가 방문했는데 황후가 나가자 딸을 죽였다는 것이다.

당근 그 딸의 살인자로 황후가 지목되어서 황후의 직위에서 쫒겨난다.)

 

사실 당나라 고종 때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당했다.

당나라의 영토를 최대로 확장한 고종이 그렇게 어리버리 황제가 아니었음에도 무측천은 권력을 잡아간다.

그녀에겐 아들이 넷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는 황태자의 자리에 올랐다가 그녀는 권력욕에 죽임을 당했고,

고종이 죽자 자신의 3남을 황제에 올려 중종이 된다.

그러나 즉위한지 50일만에 중종을 폐위시키고 막내 4남을 황제에 올려 예종이 된다.

그러나 결국 그 아들마저 쫒아내고, 스스로 주나라 성신황제에 올랐다.

 

와~ 정말 대단!!

 

 

 

무자비

 

건릉 주작문 양쪽에 고종과 측천무후의 공덕비를 각각 세웠는데

그녀의 비석은 아무것도 적지 않아서 무자비라고 불린다.

 

 

 

근데 무자비라고 해놓고 가만 보면 비석 구탱이에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뭐여? 구라친겨?

 

듣자하니 후대 사람들이 무자비에 시를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지금은 무자비가 아닌 셈이다.

 

아래는 고종의 공덕비인 술성기비

 

 

측천무후의 무자비에 비하면 고종의 비가 더 초라해 보인다.

이 비는 고종의 공덕을 찬양한 술성기비(述聖記碑)인데,

특이하게 5개의 돌을 쌓아 만들어서, 기단과 꼭대기 부분을 합쳐 '7절비'라고도 한다.

월화수목금토일 7가지 빛을 내어 능원을 비춘다고..

 

 

 

육십일번신(六十一蕃臣)

 

고종이 죽었을 때 방문했다는 61명의 사신단

근데 목이 하나같이 다 잘려져 있다.

신라 사신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어디에 있는지 못 찾겠다.

 

 

 

 

 

 

 

당고종건릉

 

무측천은 비록 성신황제에 올라 15년을 통치했지만 그녀는 다시 황후로 돌아가 남편의 무덤에 같이 묻히기로 결정한다.

그 바람에 황제와 황후의 능을 따로 조성했던 중국에서 합장릉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측천무후가 워낙 유명하니 후세 사람들은 당고종의 건릉이 아니라 측천무후의 건릉이라고 부른다.


 

 

 

 

능 꼭대기까지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가 본데

저기까지 올라갈 시간이 없다.

다음 코스로 또 이동을 해야 하니깐 좀 아숩네..꼭대기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도 멋있을 것 같은데..

 

 

 

 

건릉을 떠나기 전에 기념샷

뒤에 양쪽으로 보이는 것이 측천무후의 젖꼭지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럴싸하다. ㅋ

 

 

 

이 친구들이 영어가 되어서 오늘 투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안 그랬으면 나 완전 미아될 뻔 ㅋ

 

 

 

 

건릉 능원도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