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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릉 의덕태자묘 친할머니에게 죽임을 당한 왕자

Eden Choi 2012. 12. 18. 03:42

당나라 중종의 아들

의덕태자묘 방문기

懿德太子墓

 

 

 

당 의덕태자묘 박물관

 

 

 

뒤로 보이는 언덕이 의덕태자묘 봉분이고 그 앞의 전각이 지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건릉에는 3개의 배장묘가 있는데

지금 지도에 표시된 곳은 의덕태자묘이다.

 

의덕태자 바로 오른편에 있는 것은 영태공주묘이고 그 뒤로 약간 위에 있는 것은 장회태자묘이다.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는 당 중종(측천무후의 3남)의 아들과 딸로서 측천무후의 친손자, 친손녀이다.

그리고 장회태자는 측천무후의 둘째 아들로서 한때 황태자였으나, 역시 그도 어머니의 미움을 받아 폐위되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모두 측천무후의 친아들과 손자들임에도 측천무후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오늘 찾은 의덕태자묘의 주인인 이중현(사후에 의덕태자로 추숭됨)은

중종의 장남이자 옆에 묻힌 영태공주와는 친남매지간으로서

할머니인 측천무후가 꽃미남 장역지 장창종 형제를 총애해서 애첩(?)으로 두었는데

(장씨 형제 외모를 묘사한 기록에 의하면 이준기 얼굴과 흡사하다고 한다.)

이들이 전횡을 일삼자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는 그것에 대해 불평을 했다.

그런데 그 불평이 측천무후의 귀에 들어가고 열 받은 측천무후는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를 자결하라 명한다.

이때가 서기 701년

당시 의덕태자의 나이는 19살이었고 할머니 측천무후는 78세였다.(측천무후는 4년 뒤인 705년 82세로 병사함)

아니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그러셨어요?

그 나이에 꽃미남 애첩에 빠져서 손자 손녀를 죽여버리다니 대단하다.

하긴 그녀는 이미 첫째와 둘째 아들를 황태자로 만들었다가 죽였고

셋째(중종), 넷째(예종) 아들은 황제로까지 만들었으나 역시 폐위시킨 후 결국 본인이 성신황제가 되었다.

그러니 손자와 손녀의 죽임은 권력을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어머니인 측천무후 때문에 중종은 아들 딸 죽는 것을 지켜봐야했는데

측천무후가 죽고 중종이 다시 황제에 복위하게 되자, 의덕태자와 영태공주를 여기 건릉에 배장한다.

 

 

 

 

의덕태자 지궁 입구

 

의덕태자묘는 발굴이 이미 끝난 상태로 무덤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

 

 

 

지궁에 들어서자 벌써 음산한 기운이 올라오는게 오싹하다.

이미 청나라 황제의 지궁에도 난 들어가봤지만

지궁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청나라 황릉 보다도 더 깊숙히 들어간다.

 

 

 

의덕태자묘 시녀도

 

게다가 벽면은 이렇게 채색된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빛은 바랬지만 여기 벽화는 미술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듯 싶다.

 

 

 

 

지궁 끝 관이 보관된 장소까지 들어왔다.

 

 

의덕태자 관

 

관이 놓인 곳은 매우 비좁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안 나온다.

 

 

 

1평 남짓한 곳에 관만 이렇게 안치되어 있다.

후세 사람들이 이렇게 무덤 내부까지 구경올 줄 그는 생각이나 해봤을까?

 

 

 

청나라 황릉에는 벽화가 없었는데 그 보다 천년은 더 오래된 당나라 무덤의 벽화가 새삼 놀랍다.

 

 

 

 

다시 밖으로 돌아나가는 길에 위를 보니 이렇게 햇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다.

 

 

 

 

 

 

 


 

 

지궁을 나와서 이번엔 전시실로 이동했다.


 

 

 

 

 

아까 무덤속 벽화에서 봤던 장면이다.

 

 

 

 

 

 

 

 

 

그림은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릉인 건릉의 모습이다.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