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Japan

오키나와 슈리성과 류큐국 역사 이야기

Eden Choi 2019. 11. 3. 07:09


수리성(首里城)


일본어 발음은 슈리조(しゅりじょう)

오키나와 현지 언어로는 수이구시쿠(スイグシク)라고 하며

한국에서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슈리'라는 일본 발음에 '성'을 결합해 '슈리성'으로 표기한다.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류큐왕국은1429년 건국되어 1879년 일본에 강제 병합될 때까지

450년간 유지된 나라이며 이 류큐국의 왕성이 슈리성이다.


류큐국은 고려시대 대몽항쟁을 했던 삼별초가 최후에 정착한 곳으로 유추하고 있으며

현지에서 고려 기와가 발견되어 유물로서도 관련성을 입증하였다.

또한 홍길동이 간 율도국이 바로 류큐국이란 얘기가 있다.

홍길동이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기에 

실제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 당시 조선과 류큐국이 무역 거래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슈레이몬(守礼門)


슈리성의 입구를 알리는 문이다.

현판에 적힌 수례지방(守禮之邦)은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으로 류큐국을 상징한다.




슈레이몬은 한때 2000엔 일본 지폐의 도안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2000엔 지폐가 발행되지 않아서 실제로 이 지폐를 보기는 힘들다.




슈레이몬 앞에서 전통 복장을 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




슈리성 지도


슈리성은 13세기 슈리가 류큐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지어진 성으로

1453년 왕위 다툼으로 전소되었다가 재건된 후

거의 500년 뒤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완전 파괴되었다. 

이후 1992년에 복원을 하였으나

지난 2019년 10월 31일 화재로 건물 대부분이 전소되었다.

지금 블로그에 올린 사진은 전소되기 전 방문해서 찍은 것이다.




간카이몬(歓会門)

슈리성 성곽 내로 들어가는 첫 번째 정문으로 ‘간카이(歓会)’란 환영한다는 뜻이다.

중국 사신인 ‘책봉사’가 방문했을 때 이들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성 안으로 들어와서 본 간카이몬




즈이센몬(瑞泉門)

‘즈이센(瑞泉)’이란 ‘훌륭하고 성스러운 샘’이라는 뜻으로

문 앞 오른쪽에 ‘류히(龍樋)’라는 샘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후쿠몬(広福門)


고후쿠몬 들어가기 전 마당에는

류큐만국진량(琉球萬國津梁) 동종과 니치에이다이(日影台) 해시계가 있다.




니치에이다이(日影台) 해시계


그리고 류큐만국진량 동종은 사진의 왼쪽 전각 안에 있는데 다음과 같이 명문이 새겨져 있다.


“류큐는 남해에 있는 나라로 삼한(三韓·한국)의 빼어남을 모아 놓았고,

대명(大明·중국)과 밀접한 보차(輔車·광대뼈와 턱)관계에 있으면서

일역(日域·일본)과도 떨어질 수 없는 순치(脣齒· 입술과 치아) 관계이다.

류큐는 이 한가운데 솟아난 봉래도(蓬萊島·낙원)이다.

선박을 항행하여 만국의 가교가 되고 외국의 산물과 보배는 온 나라에 가득하다.

(琉球国者,南海胜地而钟三韩之秀,以大明为辅车,以日域为唇齿,在此二中间涌出之蓬莱岛也,以舟楫为万国之津梁,异产至宝)”


명문의 내용은 류큐왕국이 만국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삼한(三韓) 즉 당시 조선을 제일 먼저 언급한 것이 눈에 띈다.




호신몬(奉神門)

신을 숭상한다는 뜻으로 슈리성 세이덴(정전) 앞 우나(어정)으로 들어가는 정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입장권을 구입해야 들어갈 수 있다.




세이덴(正殿)과 우나(御庭)

‘우나’는 슈리성의 제일 중심이 되는 안뜰로서
정면은 ‘세이덴(正殿)’, 마주보고 오른쪽(남쪽)은 ‘난덴(南殿)·반도코로(番所)’,

왼쪽(북쪽)은 ‘호쿠덴(北殿)’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이덴(正殿)

슈리성의 정전이다. 우리로 치면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되는 건물

내부 관람도 할 수 있는데 난덴(남전) -> 세이덴(정전) -> 호쿠덴(북전)의 순으로 관람하게 된다.




난덴 뒤쪽에 조성된 정원




쇼인(書院)




복원되기 전 유적 성터




세이덴 1층 내부




세이덴 2층 내부


중산세토(中山世土)

류큐왕국은 중국과 조공무역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는데

옥좌 뒤에 걸린 편액은 청나라 강희제에게 하사 받은 것이다.


여기서 중산은 류큐국을 가리키는데 정확하게는 류큐국 이전의 나라이다.

류큐국이 건국되기 전에는 세 나라로 분리된 삼산시대로

오키나와 섬은 북산, 중산, 남산 3개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 중에서 중산이 통일하여 류큐국을 건국하였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키나와 삼산시대 지도


오키나와 역사는 크게 신화시대-  구스쿠시대 - 삼산시대 - 류큐왕국 - 일본에 병합 이렇게 이어진다.

구스쿠는 오키나와 말로 성(城)을 가리킨다.






피변관(皮弁冠)


류큐왕이 쓰던 관인데 명나라가 망하면서 중국의 영향이 약해지고

청나라는 제후국의 복식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명나라 황제가 쓰던 관처럼 12줄로 된 옥을 달았다. 

(명나라 당시 군왕은 7줄만 달 수 있었다.)





시차누나(下之御庭)


아래 뜰이란 뜻으로 세이덴 앞 우나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넓은 공간이다.

사진 오른쪽의 건물은 앞에서 언급한 코후쿠몬이다.

보통 공연이나 이벤트가 여기에서 열린다.




서쪽 망루 쪽에서 바라본 세이덴





다시 시차누나(下之御庭)로 돌아와서 공연 관람




류큐 전통 무용 공연




 




돌아가는 길



규케이몬(久慶門)


현재는 슈리성의 출구로 이용되는 문이지만 예전으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통용문이었다고 한다.



슈리성 규케이몬 앞에서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