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중국역사를 바꾼 서안사변의 현장 화청지

Eden Choi 2012. 12. 22. 06:29

 

중국 서안 여행

西安事變

서안 사변

 

화청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 뿐만 아니라

또 한번 중국 역사를 바꾼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서안사변이다.

만약 이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 중국 천안문에는 모택동이 아니라 장개석 사진이 걸려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현종 전용탕인 연화탕 담 너머를 보면 또 하나 아주 잘 꾸며놓은 시설이 나오는데

서안사변이 날때 당시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개석이 머물던 곳이다.

 

안녹산의 난으로 불타버린 화청지는 청나라 후반에 와서야 어느 정도 복원되는데,

특히 이곳은 서양 8개국 연합이 중국을 쳐들어와 베이징이 함락되면서 서태후가 서안으로 피신을 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 고급관리들을 위한 리조트로 개조되었고, 1936년 장개석이 여기에 와서 머물게 된 것이다.

 

 

 

 

물고기 좀 보소!

 

여긴 관광객이 많으니 먹이 주는 사람도 많은지 사람만 보면 알아서 떼거리로 몰려온다.

 

 

 

 

국민당 정부의 장개석이 머물던 방

 

 

 

양귀비의 해당탕을 본따 만든 탕이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다.

 

 

 

 

 

언덕위로 더 올라가면 장개석의 집무실이 나온다.

  

 

 

 

 

 

 

 

오간청

 

5개의 방으로 구성된 건물인데, 장개석이 고위급 간부들과 회의를 하던 곳이며

여기가 바로 서안사변의 현장이다.

 

 

 

오간청 내부의 모습

 

 

사진은 장개석과 그의 부인 송미령이다.

그리고

송미령의 언니인 송경령은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손문(쑨원)의 부인이며, 제일 큰 언니인 송애령은 당시 중국 최고 부호 공상희의 부인이다.

3자매가 모두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의 부인이었으니 대단한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이 3 자매를 불러

송미령은 '권력을 사랑한 여인', 송경령은 '중국을 사랑한 여인', 송애령은 '돈을 사랑한 여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송경령은 중국의 부주석이 되고, 동생인 송미령은 대만 총통 부인으로서 삶은 갈라진다.

 

 

 

  

 

장개석(蔣介石)

 

중국어 발음은 장제스, 광동어 발음은 창카이섹(Chiang Kai Shek)

 

** 뜬금없지만 '창카이섹'이란 이름하니깐 생각나는데 중국 여행 중에 광동어 발음을 접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광동어 발음이 우리나라 한자 발음과 더 유사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중국 보통화에는 없는 'ㄱ' 받침 발음이 그대로 살아있는게 신기했다.

껭찻국(경찰국), 빡(100)

물론, 여행 중에 몇마디 줏어 들은게 전부지만 광동어 발음을 들으면 그대로 알아 들을 수 있는 단어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시깐(시간), 잡지(짭찌), 신문(신문) 진짜 이렇게 발음된다.

같은 표현을 중국 보통화로 읽으면 각각 '스지엔, 자즈, 빠오즈'로 발음된다.**

 

 

다시 본론으로

 

장개석은 손문 사후에 국민당 총재로서 중국대륙을 통치한 사람이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이 계속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이에 그는 공산당 토벌에 나선다.

이때 일본이 만주 지역을 계속 침범하고 있었지만, 장개석은 일본보다 공산당 토벌을 우선시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6년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기 위해 장개석은 직접 서안에 가게 되었고, 이곳 화청지에 머물게 된 것이다.

 

 

 

서안사변

 

사진 제일 왼쪽 상단의 남자가 서안사변을 일으킨 장학량이다.

그는 장개석의 부하였지만 일본군의 중국 침범을 막기 위해 공산당 토벌보다 항일전을 주장한 사람이었다.

결국 장학량은 1936년 12월12일 반란을 일으켜 여기 화청지에서 장개석을 구금하게 된다.

그러나 장개석이 실각하면 오히려 또 다른 내전의 빌미가 되고, 이는 오히려 일본군에 더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때문에

공산당과 손잡고 일본군을 물리치겠다는 8개의 요구사항을 조건으로 한 뒤에

장개석을 풀어주고 장학량은 스스로 처벌을 요청한다.

(장학량은 군사재판 후, 장개석으로부터 사면은 받지만, 꽤심죄에 걸려서 이후로는 거의 연금상태로 일생을 보낸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장개석은 어쩔 수 없이 공산당과 손을 잡게 되고

거의 다 죽어가던 중국 공산당은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산당이 중국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되었고, 장개석의 국민당은 지금의 대만으로 쫒겨가서

중국본토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의 중화민국 2개의 중국이 되는 역사적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의 긴박했던 역사는 사라지고

저녁이 되면 여기 물위에서 당현종과 양귀비의 러브스토리 장한가가 공연된다.

 

 

 

 

 

이제 다시 서안으로 돌아갈 시간

들어왔던 길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올때 306번 버스를 탔으니 갈때도 306번 타면 되겠지..

 

 

 

여산 입구

화청지 뒤로 하고 있는 산이 여산이다.

그리고 이 여산을 배경으로 진시황릉이 들어서 있으며, 병마용도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화청지 들어가는 입구는 이렇게 새로 포장중

 

 

시안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여기까지 걸어서 나와야 한다.

중국이니깐 무단횡단은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워낙 길이 넓어 돌아가기도 힘들지만 횡단보도 찾기도 힘들다.

 

 

따라서 중국의 도로는 차와 사람이 함께 다니는 곳

 

 

화청지에서 서안 돌아가는 방법

 

화청지로 올때 버스가 길 건너편에 섰으니, 지금 사진 찍고 있는 곳에서 기다리면 될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버스 정거장 비슷한 것도 없다.

어떡하지?

그래서 두리번 두리번 서성이고 있는데, 한 버스가 지나가다가 날 보고 멈추면서 안내양이 나보고 뭐라뭐라 한다.

분위기상 서안 가냐고 묻는 것 같긴 했지만, 내가 기다리던 306번 버스가 아니라서 망설이는데, 무조건 타라고 손짓을 한다.

중국은 방향이 엉뚱한데도 무조건 태웠던 경험이 있어서 여느때 같았으면 안탔을텐데

나도 모르게 안내양의 손짓에 이끌려서 그 버스를 탔다.

이번 버스 못타면 엄청 오래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다행히 운이 좋았다.

시안 가냐고 물어보니 간다고 한다. 요금은 6원

보니깐 따로 버스 정거장은 없고, 그냥 지나가는 버스가 사람 보이면 알아서 섰다.

다 쓰러져 가는 시골 완행 버스였지만 뭐 그렇게 나는 시안으로 별탈 없이 돌아갔다.

 

이든이 배낭기 Eden @ 윌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