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당나라 황궁은 어디였을까? 장안성 대명궁

Eden Choi 2013. 8. 10. 17:00

 

 

서안 여행

 

당나라 황궁은 어디였을까?

 

 

서안은 중국고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주나라시대부터 당나라에 이르는 시기까지 고대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수도로 삼은 곳으로서

특히, 당나라시대는 실크로드를 통해 장안(지금의 서안)의 위상은

한때 '장안의 화제'라를 말이 나돌 정도로 국제적인 도시였기 때문이다.

 

 

 

 

섬서성 역사 박물관에 갔을 때 본 지도이다.

 

 

역대 13개 왕조가 장안(지금의 서안)에 그 도읍을 정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황궁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그런데 위 지도에서 당나라 대명궁의 위치가 참 이상하다.

중국은 자금성만 보아도 뭔가 직사각형에 아주 딱 틀에 맞는 형태를 갖추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떻게 대명궁은 장안성 위쪽에 툭 튀어나오게 지었을까?

 

사실, 위 지도를 보기 전까지 진시황제의 아방궁 얘기는 종종 들어봤어도

당나라 황궁이 어디 있는지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기에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참고로

보통 우리가 서안 여행가서 보게 되는 성벽은 당나라의 장안성 성벽이 아니라

군사방어의 목적으로 축소된 명나라시대 건설된 성벽이다.

 

 

 

 

 

명대성벽

 

 

 

명대성벽은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심지어 그 성벽위를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도 있을 정도로 여전히 튼튼하다.

 

 

그리고 당나라의 황궁이 궁금했던 나는

대명궁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대명궁유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당나라 황궁이었던 대명궁은 지금의 서안역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명궁 단봉문(丹鳳門)

 

 

대명궁의 정문인 단봉문이다.

대명궁은 현재 중국에서 복원작업중에 들어갔는데, 그 중 단봉문은 복원이 완료된 상태이다.

근데, 복원한 건물이 너무 최신식이다.

뭔가 옛스러움이 없다. 게다가 건물 안에는 현대식 전시실이 들어서 있어서 뭔가 고대 궁궐이라는 느낌은 안난다.

 

어쨌든, 그 규모 하나는 정말 엄청나다.

대명궁은 북경의 자금성보다 무려 4배 가까이 그 규모가 크다고 하는데

그 옛날 당나라때 이런 규모의 황궁을 건설했다니 당나라가 얼마나 번영을 누렸는지 알만하다.

 

 

 

 

 

 

 

대명궁의 성벽

 

  

 

 

 

 

단풍문 뒤쪽의 황궁 자리는 아직 허허벌판이다.

이 넓은 벌판이 한때 전각으로 둘러싸인 대명궁이 있던 자리였다니..

본전인 함원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함원전 유지

 

 

 

 

함원전 복원도

 

복원된다면 단일 건물로서는 최대의 크기라고 한다.

 

 

 

 

 

대명궁 지도

 

 

 

 

 

 

아래는 수나라 대흥성의 평면도이다.

 

수나라 대흥성 평면도

 

원래 장안의 설계는 당나라가 아니라 수나라때 완성되었다.

하지만 수나라는 2대 수양제를 끝으로 망하므로 그 뒤를 이은 당나라는 여기 대흥성을 그대로 이어 당나라의 수도 장안으로 삼는다.

이 때만 해도 황궁의 위치는 정사각형 모양의 대흥성 북쪽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데,

당나라때도 이를 태극궁으로 삼아 황궁으로 사용했다.

 

 

 

장안성 태극궁

 

 

 

 

 

당나라 장안성 평면도

 

 

현무문의 변

(玄武門之變)

 

당고조 이연은 장남 이건성을 황태자로 삼았으나,

수나라 토벌로 전공을 세운 차남 진왕(秦王) 이세민에게도 '천책상장(天策上將)'이라는 칭호를 주고,

태자의 동궁(東宮)에 필적하는 '홍의궁(弘義宮)'을 건축하게 하였다.

이에 황태자 이건성은 자신의 지위가 흔들림을 느끼게 되어

이세민의 세력을 약화시키려고 한 이건성은 당고조의 후궁 윤덕비를 움직여 이세민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게 하였다.

그 때문에 당고조 이연은 이세민을 매우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이 계획을 사전에 파악한 이세민은

황태자의 부하였던 장안성 태극궁(太極宮)의 현무문(玄武門) 수비대장인 상하(常何)를 매수하여

무덕(武德) 9년(626년) 7월 2일에 정변(政變)을 일으켰다.

이 정변으로 황태자 이건성은 현무문으로 들어왔다가 임하전(臨河殿)에서 이세민측의 습격을 받아 숨을 거두었고,

당고조 이연도 이세민에게 모든 병권을 내어주고 별궁에 유폐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태종 이세민(唐太宗 李世民 598년: 개황(開皇) 18년 1월 23일 ~ 649년: 정관(貞觀) 23년 7월 10일)

 

 

현무문의 변을 일으킨 이세민이 바로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태종이다.

그리고 이렇게 황제가 된 이세민은 아버지를 위해(?) 태극궁 북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대명궁'이다.

기록에는 아버지를 위해 대명궁을 지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태상황으로 물러나게 하여 황제가 되었기에 찜찜해서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당고조 이연은 얼마못가서 죽었고, 대명궁의 건설도 그에 따라 중지되었다.

이후 당태종의 뒤를 이어 당고종이 황제가 되고, 고종인 당태종의 후궁인 무측천을 다시 부인으로 삼으면서 대명궁 공사가 재개되는데..

그녀가 중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이며,

이후 대명궁은 당나라가 망할때까지 흥망성쇠를 함께 하는 황궁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측천무후의 건릉 바로가기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5881

 

 

 

대명궁 지도

 

 

http://youtu.be/6rGEVAN5qa0

 

대명궁 영상 유튜브에서 보기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