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South Korea

세계문화유산 안동 하회마을 구경하기^^

Eden Choi 2014. 11. 22. 08:0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안동 하회(河回)마을

 

 

 

 

하회탈 박물관 입구

 

 

안동시내 기차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46번 버스를 타면 여기 하회탈박물관 입구에 정차한다.

여기 매표소에서 하회마을 입장권을 구입하고

다시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마을초입까지 이동한다.

 

 

 

 

 

하회마을 관광안내도

 

 

 

 

 

 

셔틀버스에서 내려 제일 처음 본 곳은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 기념관

 

 

 

 

 

하회마을로 들어서니 잘익은 가을벼가 반겨준다.

 

 

 

 

 

 

부용대

 

하회마을을 한눈에 보기 위해서는 강건너 바위산 정상인 부용대로 올라가야 한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하는데

왕복에 3,000원

 

따로 매표소는 없고, 배에서 직접 현금지불하면 티켓을 준다.

티켓 보관을 잘해야 한다. 다시 돌아올때 그 티켓으로 탑승.

 

 

 

 

 

서양인 커플 여행객이 보이길래 멀리서 한컷

안동 하회마을은 서양인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강은 5분도 안되어 건너왔다.

 

 

 

 

아~ 드넓은 모래밭!! 그냥 신난다^^

 

 

 

 

 

화천서원

 

화천서원은 부용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데,

겸암 류운룡 선생을 배향하기 위해 정조 10년 경덕사(景德祠)를 세워 이곳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고종 5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강당과 주소만 남고 철거되었다가 1996년 다시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 경덕사를 비롯해, 강당인 숭교당, 동재와 서재, 문루 지산루, 원문 유도문, 주소 전사청 등이 있다.

 

 

 

 

 

부용대

 

의외로 산이 가파르다.

그래도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은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있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만송정

 

서애 류성룡의 형인 겸암 류운룡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 숲이다. 천연기념물 제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겸암정사로 이동해 보았다.

도보 3분 거리라고 했는데, 산길이라 실제로는 더 오래 걸렸다.

 

 

 

 

하회마을을 휘감아 흘러가는 낙동강

 

 

 

 

겸암정사

 

겸암정사는 중요민속문화재 제8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567년 명종 22년 겸암 류운룡 선생이 학문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건립한 조선 중기 양식의 정자채이다.

정사는 2층 누각 형식으로 되어 있고, 겸암정이라는 현판은 스승인 이황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보니깐 현재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하회마을이 여타 문화유적과 다른 것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곳에 사람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겸암정사에서는 차를 주문할 수도 있으니

낙동강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

 

 

 

 

 

 

다시 배를 타기 위해 처음 내렸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중

 

 

 

 

옥연정사

 

옥연정사(玉淵精舍)는 중요민속문화재 제88호로 서애 류성룡 선생이 재정적인 문제로 세우지 못하다가,

 탄홍 스님이 자청하여 10년동안 시주를 거두어 선조9년 1576년 짓기 시작하여, 선조 19년 1586년에 완성하였다.

 이때 서애의 나이 45세였고, 집을 완공한 뒤 4년 뒤에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1605년 낙동강 대홍수로 하회의 살림집을 모두 잃고, 이곳에 은거하여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내부에는 서당으로 사용하던 세심재(洗心齊)와 서애가 거주하며, 징비록을 지었던 원락재(遠樂齋)가 있다.

 

 

역시 이곳에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고, 민박도 가능한 듯 보였다.

하회마을에 가면 이렇게 고택에서 하룻밤 자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옥연정사

 

 

 

 

다시 배를 타고 하회마을로..

 

 

 

 

 

배에서 바라본 부용대

 

 

 

 

만송정

 

 

 

 

강둑길을 따라 계속 걸어보았다.

 

 

 

 

 

고개를 돌려 강변을 바라보니 억새풀밭이 장관을 이룬다.

 

 

 

 

 

초가집과 감나무 그리고 까치

 

 

 

어릴 때 생각난다. 집앞에 감나무가 있었는데..

 

 

 

 

 

양오당(주일재)

 

 

당호는 양오당(養吾堂)이고, 주일재(主一齎)는 류후장(柳後章)의 아호이다.

 이 집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증손인 류만하공이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그의 아들인 류후장공이 증축하였다.

주일재는 중요민속문화재 제91호로 사랑채, 안채, 사당, 광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의 건물은 사랑채이고, 앞의 조그만 담장은 내외담이라고 하는데,

안채로 통하는 문 앞에 쌓아서 안채가 보이지 않게 한 것이 특징이다.

 

 

 

 

 

하회마을은 이렇게 담장길만 거닐어도 포근해진다.

 

 

 

 

 

삼신당 신목

 

마을 중앙에는 수령 600년 이상으로 추측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풍산류씨 입향 시조인 전서공이 심었다고 전해지며, 이 나무를 잘못 건드리면 재앙을 입는다는 토속신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풍수지리상 마을의 혈에 해당하는 곳으로 하당으로 불리며, 정월과 대보름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지낸다.

 

 

 

 

하회마을은 단체로 수학여행온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나도 살짝 옆에 서서 가이드분의 안내를 들어본다.^^

 

 

 

 

 

북촌댁(화경당)

 


중요민속문화재 제84호로 북촌댁은

 1797년 정조 21년에 지중추부사 류사춘에 의해 처음 건물이 세워졌고, 1862년 철종 13년에 경상도도사 류도성에 의해 증축되어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마을 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리었으며, 사랑채와 안채, 별당,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다.

 주요 건축물로는 큰 사랑채인 북촌유거와 중간 사랑인 화경당, 작은 사랑인 수신와를 비롯하여 안채, 등이 있고, 류이좌의 유품이 몇 점 남아 있다.

2007년 2월 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2008년 한류스타 배용준이 이곳 화경당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다.

 

 

현재 북촌댁은 내부관람을 할 수가 없었는데, 관람객의 담뱃불로 화재가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중한 우리의 유산을 담뱃물로 날릴뻔 하다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 예사롭지 않다.

하회마을은 뭐든지 몇백년은 되어보이니깐!

 

 

 

 

양진당

 

보물 제306호인 양진당(養眞堂)은 풍산 류(柳)씨의 대종가(大宗家)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입암고택(立巖古宅) 현판은 겸암 류운룡(柳雲龍, 1539~1573)선생의 부친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1515~1573) 선생을 지칭한다.

당호인 양진당(養眞堂)은 겸암 선생의 6대 자손인 류영(柳泳, 1687~1761)공의 아호(雅號)에서 유래하였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을 가지며,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을 가지고 있는 고려와 조선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충효당

 

보물 제414호인 충효당은 서애의 문하생과 삼림들이 장손 류원지를 도와서 지었고,

증손자 류의하에 의해 확장된 조선시대 사대부 양식의 고택이다.

충효당 내에는 영모각이 별도로 건립되어 서애 선생의 저서와 유품이 전시되고 있다

바깥마당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기념식수가 있다고 하는데, 몰라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개인적인 의견으론 하회마을에서 이 충효당 건물이 제일 아름다운 것 같다.

 

 

 

 

 

 

담연재

 

담연재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 때 이곳 앞마당에서 하회탈춤 공연이 펼쳐졌던 곳이다.

 탤런트 류시원의 부친 소유 저택이라고 해서 더 유명한 곳인데, 일반에 개방된 곳은 아닌듯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남촌댁(염행당)

 

 

중요민속문화재 제90호로 정종 21년 지은 99칸의 건물로 하회마을 남쪽 사대부의 가옥을 대표하였으나,

 1954년 화재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고 내부에 있던 진귀한 도서와 골동품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대문간채와 별당, 사당만 남아있다.

 

사진의 건물은 복원된 사랑채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오래된 느낌은 없었지만 내부가 공개되어 있었다.

 

 

 

 

 

 

잉? 하회마을에 교회가 있네?

정말 교회는 없는 곳이 없구나~ 왠지 하회마을과 교회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여긴 교회도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ㅎ

 

 

 

 

지산고택

 

 

대문없이 널찍한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채는 정사와 유사한 형태로 지어졌다.

우승지와 대사간을 지낸 류지영이 독서에 매진하기 위해 지은 도사관이다. 그의 호를 따서 사랑채 이름을 지산서루로 하였다.

현재 이곳은 민박을 겸하고 있으니 고택체험하기 좋을듯!

 

 

 

 

 

하회마을을 다 돌아볼려니 응근히 오래 걸린다.

병산서원까지 모두 방문할려면 반나절 이상 소요될 것 같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하룻밤 고택체험도 하면서 구경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마을내에는 민박집 외에 따로 식사할 만한 곳이 없으니, 낮에만 둘러볼 생각이면 미리 밖에서 식사를 하고 오는게 좋다.

 

 

들어올때와 달리 나갈때는 마을내에서 바로 46번 버스를 탈 수 있는데

하회마을 출발 시간표는 아래 사진 참조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