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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시조 헌원 황제릉! 중화 제일의 무덤

Eden Choi 2016. 11. 24. 04:16



중국인의 시조

헌원 황제의 무덤 황제릉(黃帝陵)




황제릉 헌원묘 입구



황제(黃帝)는 누구인가?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한 후, 기존의 왕(王) 칭호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 보다 더 높은 호칭을 구상하는데..

중국 신화에 나오는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따온다.

이 이후로 그가 최초의 황제로 시황제, 제 2황제, 제 3황제 이렇게 영원히 불리기를 원했지만

진나라는 제 3황제에서 망한다.(제 3 황제는 명목상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제 2황제에서 아작남)


그럼 지금 내가 말하고자는 황제(黃帝)는?

한자를 잘 봐야 한다. 임금 황(皇)자가 아니라 누를 황(黃)자를 쓴다.

재위 기간 중 황룡이 나타나 황제라고 불렸는데,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성은 공손씨 이름은 헌원이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삼황오제 중 오제의 첫 번째 왕으로 삼황이 전설속의 인물이라면

오제부터는 실존했던 인물로 여겨서 중국인들이 실질적 시조로 보는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단군에 해당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정부가 이민족을 포섭하기 위하여, 이 황제와 죽도록 싸웠다는 치우와

(치우: 환단고기를 믿는 사람들은 단군조선 이전 신시배달국의 14대 자오지 환웅이라고 한다)

농업의 신이었던 염제 신농씨까지 포함하여 중화 3조라고 우기고 있다.

즉, 중국인의 시조는 3명이라는 것이다. 


아니 황제와 그렇게 싸웠던 치우를 지금은 자기들 조상이라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중국인들의 뇌리에는 황제 헌원씨를 그들의 조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대대로 내려오던 무덤 자리에 엄청나게 큰 사당까지 조성해 놓았다.




구글 지도에서 본 황제릉 헌원묘

위치는 중국 섬서성 연안시 황릉현 북쪽 1Km되는 교산(橋山)이다.




이제 그 중국인들의 시조라는 황제릉으로 들어간다.




올라오면서 잠시 뒤돌아보니 이런 풍경이다.




헌원묘(軒轅廟)


황제를 기념하여 새로 지은 헌원묘

묘라는 글자에 착각해서 무덤으로 보면 안 된다. 이건 사당 묘(廟)자로 무덤은 산 정상에 따로 있다.




황제가 직접 심었다는 황제수

즉 5천년이 더 된 나무다. 믿거나 말거나 ㅋ




뒤로 더 들어가면 사당이 나온다.




인문초조(人文初祖)


그들의 조상이라고 '초조'라는 칭호가 쓰여져 있다.



황제 헌원


황제는 110살까지 살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황제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지 않자

옷만 남기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황제가 두고 간 옷과 물품을 교산에 묻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황제릉

이후 역대 중국 왕조에서 황제릉을 계속 관리해 왔다.





사당 뒤로 나가면 돌로 된 대규모 전각이 나온다.

역시 대륙이라 그 규모에 놀란다.






황제 헌원



하지만 연인들에겐 데이트 장소^^

중국도 요즘 커플티가 대세인 듯 ㅎ





구정(九鼎)?


구정은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의 우왕이 아홉 제후들에게 받은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9개의 솥이다.

이게 하나라에 이어 상나라, 주나라까지 이어지며 천자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는데,

진나라 무왕때 이것을 가져올려고 힘자랑을 하다가 다쳐서 죽은 일화가 유명하며,

다음 왕인 진 소양왕(어머니가 앞 포스트에서 언급한 중국 최초의 태후 미월)이 주나라를 함락하고

가져오다가 잃어버렸다는 그 구정?


하지만 황제 헌원은 하나라의 시조 우왕 보다도 한참 전인 사람이라

구정이 여기에 있으면 안 될텐데..음.

여하튼 상징적으로 솥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참고로 구정을 분실하고 난 이후에 전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초나라의 국보였던 화씨지벽(옥 원석으로 중드 미월전에 나옴) 갈아서 최초의 옥새를 만든다.

이후로 옥새가 황제의 상징이 됨.


완벽(完璧)과 하자(瑕疵)라는 말은 위나라 '인상여'가 이 화씨지벽을 되찾아 오려고 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하나라 우왕의 무덤도 찾아 갔다 와서 아래 링크함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 우왕의 무덤 '대우릉'





다시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나와 이번에는 황제릉으로 향한다.



들어올 때 보았던 황제수





황제릉은 교산 정상에 있어서 여기 헌원묘에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물론 중국이라 전동차가 운행하고 있었는데, 왕복에 20위엔

보통땐 같으면 걸어올라 갔을텐데 정상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 그냥 돈 주고 탔다.

중국은 워낙 넓어서 같은 관광지 안에서는 이렇게 또 차를 타야 하다니..


아..근데 생각보다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한 1km 정도?

급 전동차 탄거 후회된다. ㅠㅠ




황제릉 입구









뒤쪽 무덤의 비석에는 '교산용어'(橋山龍馭)'라고 쓰여져 있는데

황제가 용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늘로 올라갔으니 실제 시신이 묻힌 것은 아닌 가묘(假墓)이다.



이게 황제의 옷(?)이 묻혔다는 그 무덤이다.





뒤쪽으로 이렇게 산이다.



5천년이 넘은 황제릉이지만 산 아래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즐비.




황제릉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




갑골문의 원조가 아닐까? 아니면 갑골문을 그냥 옮겨 놓았나?

여하튼 벽면에 이런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중국어를 모르니 이 그림들이 적확히 뭘 의미하는지 몰라서 아쉽다.





한무선대(漢武仙臺)


한무제가 장생불로를 기원하며 쌓았다는 제단

황제릉은 한무제뿐만 아니라 역대 제왕들이 와서 제사를 지낼 정도로 중국인들에게는 중요한 장소이다.




황제릉에 대한 제사는 20세기에 와서도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 이 비석은 중화민국의 장제스(장개석 蔣介石)가 직접 쓴 글씨이다.





한무선대는 계단이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 갈 수 있는데,

나무때문에 제단에 올라도 달리 크게 보이는 것은 없다.




여하튼 이렇게 황제릉을 둘러보고 이제 하산





황제릉은 섬서성 연안시에 있다. 중국 서안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이며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후커우 폭포가 있다.


이제 그 폭포를 보러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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