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China

리장고성의 경복궁 '목부' 여강 역사도 함께.

Eden Choi 2019. 3. 18. 03:54


여강고성 목부

(麗江木府 리장무푸)



목부의 입구를 알리는 충의문


여강고성(麗江古城)은 송(宋)나라 후반에서 원(元)나라 초반 13세기에 건축되었는데
현재 나시(納西)족을 주축으로 한(漢)족, 바이족, 이족, 묘족, 회족, 티베트족, 장족 등이

모여 사는 중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잘 보존된 소수 민족의 고성이다.


고성을 다스리는 나시족의 수장은 '토사'라 불렸는데

토사란 원‧명‧청 시대에 중앙정부가 소수민족의 토착 지배자에게 부여하는 관직으로

거리가 너무 멀거나 오지인 지역을 중앙정부에서 직접 통치가 어려울 경우에 행해졌는데

그 시작은 1253년에 몽골군이 쳐들어오면서부터이다.

당시 이곳의 지배자는 몽골의 쿠빌라이칸에게 항복하고 토사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후 이곳의 토사는 22대에 걸쳐 420년간 이곳을 다스린다.





목부(木府)


하지만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명나라가 들어서자 1382년에 이곳의 토사는 명나라에 귀순해

명나라 초대 황제인 주원장에게 목(木)씨를 하사 받고 세습제의 목부를 봉받게 된다.

그래서 목부는 우리로 치면 여강의 경복궁에 해당한다.




목부 입장료: 성인 60원

여강에는 고성발전금이 있다고 했는데 내가 갔을 때 없어졌는지 입장권만 사면 되었다.




목부 전경





의사청(義事廳)

우리로 치면 경복궁의 근정전에 해당되는 건물이라 하겠다.

황제의 건물에만 황색기와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여기도 우리나라처럼 청기와이다.




의사청에서 바라본 목부의 정문




의사청 내부




만권루(萬卷樓)



만권루라는 이름으론 봐서는 책을 보관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만권루는 윗층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만권루에서 바라본 의사청






만권루에서 바라본 여강고성


리장고성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성벽이 없는 고성이라고 한다.

이는 토사의 성이 목(木)씨이기 때문에

나무 목(木)자에 성벽을 두르면 곤란한 곤(困)자가 된다고 하여 성벽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호법전(護法殿)



호법전의 내부




호법전에서 바라본 만권루






여강(리장)고성의 모형



목부와 사자산




나시족의 모습




목부의 뒷동산?

여하튼 목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삼청전(三淸殿)으로 올라가 본다.



삼청전에서 바라보 여강고성의 모습


아쉽게도 나무가 풍경을 가려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역시 중국!

여기서 또 입장권을 사야 한다.

요금이 싼 것도 아니고 사진 하나 찍자고 또 티켓을 사는 것은 포기

여기서 대충 마무리하고 되돌아 나간다.




사자산 입구

티켓을 사야 한다는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청전은 제일 윗층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여기서 리장고성의 전망을 즐길 수 있었다.




삼청전에서 바라본 목부




리장고성의 풍경




목부풍운


추자현이 주인공으로 여기 목부를 배경으로 한 중국드라마이다.

위 포스트는 목부 내 가원에 붙어 있는 것을 찍은 것이다.


명나라 때 리장고성은 대연진(大硏鎭)이라고 불렸는데

중국 전역을 유람하며 쓴 '서하객유기'의 저자 서하객(徐霞客‧쉬샤커이)은 이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대연진에는 1,000여 호의 기와집이 고성을 가득 채우고

목씨(木氏)는 왕궁과 같이 크고 화려한 궁궐에서 거처하고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서하객을 리장에 초청한 인물은 당시 이 지역의 토사였던 목증(木增‧무쩡)이다.

 목증은 학식이 풍부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나 리장에 목증성세(木增盛世)라고 할 만큼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인물이었다.

추자현은 이 목증을 사랑한 여인으로 원래는 목부에 복수하러 들어갔다가 사랑에 빠져

복수와 고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인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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