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South Korea

비오는 날에 죽향속으로..전남 담양

Eden Choi 2008. 9. 18. 00:43

  

담양 소쇄원瀟灑園 입구

 

버스를 타고 마산을 넘어가니 혹시나 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모처럼 큰이모를 모시고 나왔던 나들이기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빨리 멈추기를 바라지만

오히려 빗방울은 더 굵어만 진다.

 

대나무 울타리에 한올한올 맺혀 버린 빗방울

 

제월당 霽月堂

 

  

빗방울이 굵어지매, 나들이객들은 소쇄원 제월당 처마밑으로 숨기에 바쁘다.

맑은 날이었다면 그냥 횡하니 스쳐지나갔을 이 곳에, 늦여름 비가 객들의 발목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한다.

잠시 앉아 명상에 잠겨보니,  대나무 사이 부는 바람소리가 '소쇄소쇄' 하던가?

 

고재종님의 시 '소쇄원에서 시금(詩琴)을 타다'를 떠올려본다..

 

소쇄소쇄, 대숲에 드는 소슬바람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한 무리 오목눈이가 반짝반짝 날아오른다

 

소쇄소쇄, 서릿물 스치는 소리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몇 마리 빙어들이 내장까지 환하다

 

자미에서 적송으로 낙엽 따라 침엽 따라

 괴목에서 오동으로 다람쥐랑 동고비 따라

빛나는 바람과 맑은 달이

비잠주복飛潛走伏을 다스리면

 

오늘은 상강, 저 진갈맷빛 한천 길엔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기러기며와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푸른 정신뿐

 

나 본래 가진 게 없어 버릴 것도 없더니

나 여기 와서는 바람 들어 쇄락청청

나 여기 와서는 달빛 들어 휘여청청

 

 

광풍각 光風閣

 

  

소쇄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이라 하고 방과 대청마루가 붙은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

하여 따온 이름이라 한다.

 

오곡문 五曲門

 

담장 밑으로 개울이 흐르고, 중간에 뚫려버린 담은 이미 안과 밖을 구분하는 담이 아니다.

저 멀리 비맞으며 걷는 행인을 기다리는 아늑한 쉼터가 될 뿐..

 

 

 학저면압(壑渚眠鴨)

 

하늘이 유인(幽人)에게 부쳐준 계책은
맑고 시원한 산골짜기 샘물이라네
아래로 흐르는 물 모두 자연 그대로라
나눠받은 물가에서 오리 한가히 조네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소쇄원 사십팔영' 중 제33영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애써 찍으려는 오리들은 자꾸만 숨어들어가고, 카메라 렌즈에 어느새 빗방울이 맺혔지만,

시간은 어느덧 멈춰져 버려 난 자연속에 끼어 있는듯..

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기에 어쩔수 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해간다..

 

 담양 죽녹원의 죽림

 

우리나라 최고의 대나무의 고향, 죽향(竹鄕) 담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마을 지나가는 곳곳마다 초록빛 가득한 죽림을 볼 수 있다..

 

  

생각을 잊고, 그냥 길이 난데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비오는 날의 죽림욕 또한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닐테니..

  

담양군에서 이 곳 죽림원에 많은 투자를 해 애지중지 한 듯 하다..

죽녹원에는 사랑이 변치않는 길, 추억의 샛길,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등
                 가족과 연인이 즐길 수 있는 테마 산책길 등 이러저리 담양군의 손길과 성의가 돋보였다.

  

 어딜 가나 그놈의 이름은 남겨야 하는가??

사진 찍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찍고 나서 올려보니 대나무에 흠집 낸 이름이 보인다..

 

 

 

 

서서히 비는 그쳐가고..

입고 있던 우비와 우산은 이제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이던가..

죽녹원을 떠나 최고의 가로수길로 뽑힌 담양 메타세쿼이아로 길을 옮기니,

멈춘 줄만 알았던 비가 또 다시 스멀스멀 기어내린다..

쳐박았던 우비는 어디에 있지??

 

  담양 메타세콰이어(Metasequoia) 가로수 거리

 

도로 전체가 이렇게 메타세쿼이아로 가로수가 되어있었는데, 그 중 이 곳은 옆에 도로가 나면서

따로 보호를 받아 차가 없이 사람들이 자연스레 거닐 수 있게 보존 되어 있다.

70년대 가로수 사업의 일환으로 담양이 지정되어 이 메타세콰이아 나무를 심게 되었는데,

이미 30년이 지나 이렇게 거목이 되어버렸다..

 

 

  

    

 

한 때 이 도로가 나면서 메타세콰이어 나무는 벌목의 위기에 처했으나,

담양군민들의 적극 보호로 이렇게 도로 옆에 또 도로를 놓아 지금껏 이렇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이 메타세콰이어 거리는 이 도로를 지나 한참을 더 그렇게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30분을 더 달렸나??

오늘의 마지막 코스 '강천산'에 도달했다.

 

 계곡을 따라 모래밭길이 잘 조성된 강천산 초입

 

담양군과 순창군의 경계가 되는 강천산은 순창군에서 국내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산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기자기한 산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좋아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듯 싶다..

 

 병풍폭포

 

  

등산로 내내 모래밭길로 만들어 놓아 맨발로 걷는 건강산책로라고 한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산이 가파르고 올라가기 바쁜데, 계곡을 따라 깊숙이 한참을 들어가도 산새가 험하지 않다.

 

 강천사

 통일신라시대 승려 '도선(詵)'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물빛이 이리도 고은데, 그곳에 물고기들도 떼어 지어 저리 노닐고 있다.

 

 십장생교

근데 발음 잘못하면 살짝 욕같다..ㅋㅋ

 

 강천산 구름다리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는데..

이제서야 비는 멈추고 햇빛이 쪼아댄다.

 

시간적 여유만 더 있다면, 강천산 구름다리를 건너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