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Japan

일본의 궁, 비오는 날의 교토고쇼

Eden Choi 2009. 9. 19. 02:55

 

 

일본 교토 여행

京都御所

일왕의 궁궐 교토고쇼

 

 

 

일왕이 도쿄의 황궁으로 이동하기 까지 일왕의 거주지는 교토였다.

그 교토의 왕궁인 교토고쇼(京都御所)는 교토교엔(京都御苑)이라는 광범위한 정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데라마치고몬 寺町御門 East Gate of the Kyoto Gyoen

 

 

 

 

교토교엔(京都御苑) 안내도

내가 서있는 곳이 바로 화면 오른쪽 아래 붉은 화살표가 있는 곳이다.

 

 

 

 

 

오미야고쇼와 센토고쇼 입구

 

센토고쇼(Sento Gosho Imperial Palace 仙洞御所)는 퇴위한 천황이 거주하던 곳으로

역시 궁내청 사무실에서 미리 신청을 해야만 예약할 수 있다.

고토고쇼만 예약했기에 이곳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겐레이몬 Kenrei-mon 建礼門

 

고토고쇼의 남문이지만 현재 여기로는 들어갈 수 없고,

궁내청 사무실에 가서 먼저 신청을 한후 대기실에 기다렸다가 가이드를 통해서만 관람할 수 있다.

 

 

 

아래는 관람시 받은 팜플렛에 소개된 교토고쇼에 관한 설명이다.

 

간무천황은 784년에 수도를 나라의 헤이조쿄(平城京)에서 교토의 나가오카교(長岡京)로 천도한 후, 794년에 다시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하였다.
헤이안쿄는 현재 교토시가 중심지에 해당하는 곳에 조영되었으며,  남북 약 5.3km, 동서 약 4.5km의 사각형 모양으로,

동서의 중앙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스자쿠오지 큰길(현재의 센본도리)을 중심으로 사쿄(동쪽)와 우쿄(왼쪽)로 나뉘어져 있고,

큰 길과 작은 길이 바둑판 모양으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되어 있다.

또한, 헤이안쿄 북쪽 끝의 이치조오지 큰길에 내접하는 곳에 남북 약 1.4km, 동서 약 1.2km 크기의 다이다이리(大內裏:궁성)가 있는데,  

이 곳에서는 정무와 의식을 주관하는 조도인(朝堂院), 부라쿠인(豊楽院), 다이조칸(太政官) 및 그 밖의 관청이 들어서 있다.
조도인은 다이다이리(궁성)의 남쪽 중앙에 있고 남쪽으로 스자쿠오지 큰길에 접하며,

원내의 북쪽에는 정청인 다이고쿠덴(大極殿:현재의 센본마루타마치 부근)이 세워져 있었다.

참고로 현재의 헤이안진구 신사의 건물은 당시의 다이고쿠덴을 축소하여 복원한 것이다.

천황이 머무는 곳은 '다이리'라고 불리웠으며, 천황이 일상생활을 보내는 곳이었다.

다이다이리(궁성)의 중앙에서 약간 동쪽, 조도인의 북동쪽에 있으며 남북 300m, 동서 220m의 크기의 규모였다. 

 

바둑판 모양으로 건설된 당시 헤이안쿄(平安京)와 오른쪽 다이다이리(大内裏) 지도  

 

 

 

헤이안쿄 다이다이리 모형도


정전인 시신덴(紫宸殿) 이외에도 세이료덴(清涼殿), 고키덴(弘徽殿), 레이케이덴(麗景殿), 히교샤(飛香舍)등

 헤이안시대의 왕조 문학으로 낯익은 궁중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다이리(内裏, Inner palace) 지도

 

 

 이곳으로 천도하여 166년에는 다이리궁전에 처음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당시의 무라카미 천황은 레이제이인(후원)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으며 다이리 궁전은 바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다이리 궁전은 여러번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천황은 다이리 궁전이 완성될 때까지 귀족의 저택 등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으며 다이리 궁전은 바로 재건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다이리 궁전은 여러번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천황은 다이리 궁전이 완성될 때까지 귀족의 저택 등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이 임시 궁전을 사토다이리(里内裏)로 부르게 되었는데,  헤이안시대 말기에는 다이다이리 궁성내에 있었던 천황의 거처인 다이리 궁전은 그다지 사용되지 않고, 사토다이리가 일상의 거처로 이용되었다. 이때, 다이다이리 궁성의 다이고쿠덴 등에도 여러번에 걸쳐 화재가 발생하였고, 잦은 전란 등으로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가 폐허가 된 것처럼 마침내 다이리 궁전도 이같은 과정을 거쳐 폐허가 되기에 이르렀다.
현재의 교토고쇼(京都御所)는 '쓰치미카도 히가시노토인도노(土御門東洞院殿)'라고 불리웠던 사토다이리의 하나로써, 헤이나쿄 다이리 궁전이 폐허가 되기 전후부터 자주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331년 고곤천황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후, 1869년 도쿄로 수도를 천도하기 직전까지 오랜기간에 걸쳐 궁전으로써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자주 화재와 재건을 반복하였는데 1788년 재건시, 에도막부는 로추(쇼군의 직속으로 국가 정사를 돌보는 직책)마쓰다이라 사다노부를 재건하는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당시의 전례와 고사에 밝았던 우라마쓰 고젠(우라마쓰 미쓰요)의 고증에 따라 시신덴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의 의장을 헤이안시대의 건축양식에 따라 복원하였으며,  또한 히교샤 등 소실되었던 건축물의 일부를 복원하고 옛건축양식으로 복원하여 새로운 다이리 궁전은 1790년에 완성되었다.
그 후, 이 건축물들도 1854년에 소실되었지만, 막부는 고카쿠 천황시대의 다이리 재건계획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여,  다음해인 1855년에 이례적인 빠른 속도로 재건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의 고토고쇼인 '쓰치미카도 히가시노토인도노'는 당시 천황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장악했던 후지와라씨의 사저였다.

그럼 일본의 왕궁은 지금은 다 불타 없어졌다는 것이잖아?

현재의 일왕이 살고 있는 도쿄의 왕궁도 원래는 도쿠카와이에야스가 살던 에도성 한귀퉁이고, 교토의 왕궁도 없어진지 오래네..

그냥 신하집에서 빌어살다가 하도 오래 살다 보니깐 거기가 왕궁이 되었다는 얘기..음..

 

일본이 만세일계를 외치며 왕조가 뒤바뀌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의 왕은 신하보다 힘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우리나라도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진 창덕궁이 법궁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궁궐이 불타 인조의 아버지였던 정안군의 사저를 임시 궁궐로 사용했으며(지금의 경희궁)

조선 말기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자리에 있던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고종황제가 거처를 하지 않았나..

그래도 개인적으로도 창덕궁 비원에 갔을 때 본 그 아름다움은 여기 교토고쇼랑 비교할 바가 못된다.

여하튼 왔으니 한국과 일본의 궁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자~

공부는 이정도 했으니 교토고쇼로 들어가 보자!

 

 

 

 

오쿠루마요세 Okurumayose 御車寄

입궐을 허가받은 자가 정식으로 들어가는 현관이다.

 

 

  

 

기슈몬 Gishumon Gate 宜秋門

  

 

  

 

쇼다이부노마 Shodaibunoma 諸大夫の間

 

정식 용건으로 입궐시에 대기하는 건물로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이 대기하는 구교노마, 제후와 쇼시다이가 대기하는 덴조비토노마,

그리고 이곳 쇼다이부노마는 그 밖의 사람이 대기하는 곳이다.

 

 

 

신미쿠루마요세 Shinmikurumayose 新御車寄

   

 

 

겐레이몬 Kenrei-mon 建礼門

아까 들어올 때 밖에서 본 교토고쇼의 남문

  

 

 

조메이몬 Jomeimon Gate 承明門

 

 

 

조메이문을 통해 본 시신덴

 

 

 

시신덴 Shishinden 紫宸殿

 

궁궐의 정전을 일컬어 시신덴이라고 한다. 우리로 치면 근정전 쯤..

보존을 위해 내부관람은 불가

  

 

 

겐슌몬과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슌코덴 Shunkoden 春興殿

  

 

 

고고쇼 Kogosho 小御所

 

 

 

이곳은 세이료덴 앞마당에 깔려진 돌정원이다.

 

 

세이료덴 Seiyoden 清涼殿

일본 천황이 일상생활로 거처하던 곳이다.

 

 

  

 

 

오이케니와 정원 Oikeniwa Garden

 

뒤쪽으로 보이는 큰 전각이 오쓰네고텐 Otsunegoten 御常御殿

교토고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각이며, 세이료덴과 함께 천황이 일상생활을 보내는 어전으로

후대에 실용성을 중시한 별채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게야키바시 Keyakibashi Bridge

 

 

  

  

 

 

뒤쪽에서 바라본 오쓰네고텐 御常御殿

 

 

 

 

이렇게 1시간30분 정도 한바퀴 둘러보면 교토고쇼 관람은

 

이제 천황보다 더한 권력을 장악했던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교토에 왔을 때, 머물기 위해 건설했던 니조성으로 옮겨가 보자.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