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South Korea

울면서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다..관음사-성판악 코스

Eden Choi 2009. 12. 30. 13:39

 

한라산 백록담 등반기

 

내 생애 처음으로 한라산을 오르며..삼강휴게소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하늘

 

 

 

관음사->백록담->성판악

 

  

한라산을 등반하는 탐방로는 모두 5곳인데, 어리목, 영실, 관음사, 성판악, 그리고 올해 개방된 돈내코탐방로 이렇게 5 코스이다.

이중 백록담까지 오를 수 있는 코스는 관음사와 성판악 코스 2곳뿐.

이왕 한라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었으니 백록담은 꼭 보고 싶었고, 그래서 난 관음사 코스로 올라 성판악코스로 내려오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정한 것은 오로지 교통요금 때문이었다.

제주시에서 성판악까지는 대중교통이 있으나,  관음사 코스까지는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이 꽤 나온다고 들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5,000원에 관음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해 준다길래, 등산은 관음사, 하산은 성판악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난..한라산 코스중 가장 어렵다는 관음사코스를 너무나 무작정 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요며칠 동안 엄청 내린 눈으로, 바로 전날까지 정상 등반길이 막혔던 길을.. 

 

 

 

 

관음사 휴게소

 

한라산을 오르기 전에, 여기서 김밥을 사기로 했다. 산에서 먹을거리가 없을테니 미리 준비해야쥐~

그래도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을 오르려면 왕복 8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하니깐.

근데, 김밥만 사러 들어갔는데, 휴게소 아저씨가 내 복장을 보더니, 이것저것 사라고 막 그런다.

그러면서 스패츠를 그 자리에 뜯어 내 발에 채우고, 아이젠이랑 마스크랑 살 것을 권유한다.

가격을 물어보니 스패츠 15,000원 달라고 한다. 헉..왜 이리 비싸?

이미 착용을 했으니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울며겨자먹기로 샀다.

그 바람에 정작 필요한 아이젠을 못샀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눈길 등반에는 아이젠을 사라고 하고 싶다.

게스트하우스에서 4천원에 판다고 할 때 샀어야 했는데..

 

* 스패츠(Spats) : 바지가 젖지 않도록 종아리 감싸는 패드, 각반.

* 아이젠(Eisen) : 미끄러지지 말라고 신발에 착용하는 체인

(둘 다 이번 여행하면서 알게된 등산 용어..아이젠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고, 영어로는 'crampons'라고 한다.)

 

 

 

한라산 관음사 코스 등반로

 

어쨌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눈내린 한라산을 난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로 아이젠도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얼음골? 동굴이었는데 이름이 기억안난다.

 

 

 

이때까지는 좋았다!

여유가 있으니 혼자서 이렇게 카메라 세워놓고 포즈도 잡아보고..

눈이 엄청 쌓이긴 했지만, 등산로는 이미 간 등산객들로 눈이 다져져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룰루랄라..괜시리 관음사코스 어렵다고 겁먹은 것 아냐?

15,000원이나 주고 산 스패츠가 아까워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계단으로 된 등산로가 문제였다.

눈이 많이 쌓이다 보니 경사진 계단은 완전 눈으로 미끄럼틀

아..어떻게 올라가라고! 몇번을 미끄러지며 기다시피 올라갔다.

서서히 운동화가 젖어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 와중에 여기서 썰매 타면 정말 재밌겠는데?

내가 아직 이때만 해도 한라산 무서운 줄 몰랐다.

 

 

 

몰랐기에 아직까지 여유는 있다.

눈내린 한라산의 경치가 힘든 것을 잊게 만들었거든..

게다가 어제까지 정상 입산이 통제될 정도로 그렇게 엄청난 눈이 내렸던 한라산이었지만, 날씨는 좋다.

 

 

 

슬슬 배가 고파오네..

삼강휴게소에 도착해서 먹으려고 했지만, 아침을 토스트 한조각으로 때운지라 우선 먹고보자.

김밥이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아무도 없는 이 산길에, 저 까마귀만이 내 친구가 되어주는구나..

 아니면, 내가 지쳐 쓰러지면 잡아먹으려고 기다리는 것이얌?

 

 

 

다시 길을 서둘렀다.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12시까지 삼강휴게소에 도착하지 않으면,

백록담까지 등반을 막는다고 한다.

 

 

 

산을 오를 수록 눈이 더욱 깊어진다.

갑자기 오른쪽 다리에 근육통이 찾아온다..안되는데..아직 갈길이 먼데..

이때 부터 난 절뚝 거리면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

다리가 아프니 몸이 두배로 힘들다..아..포기할까?

게다가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눈때문에 휴게소까지만 개방되고,

백록담까지는 갈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음..어떡하지?

 

 

 

간신히 12시에 맞춰 삼강휴게소에 도착했다.

다행히 백록담까지 길은 개방되었지만,  관리하시는 분이 내가 골찌라고 서둘러 오르라고 한다.

 

 

 

잠시 쉬지도 못하고, 여기서 인증샷 하나 찍고 바로 길을 나섰다.

그나마 오늘 하늘 만큼은 엄청시리 맑다.

 

 

 

   

 

 

와...근데 길이 장난 아닌데?

어제까지 이 길은 눈때문에 통제되었던지라 지금까지와는 길이 차원이 다르다.

눈 깊이가 2배 이상 깊고, 길도 제대로 없다

무릅까지 푹푹 빠지기 시작하고, 등산길로 눈에 덮혀 오로지 먼저 올라간 등산객의 발자국만이 길을 안내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로 내앞에서 떠났던 등산객들과 난 엄청난 거리 차이를 나타낸다.

이미 저들은 저만큼 가고 있는데, 계속 빠지는 눈길에 오른쪽 다리는 계속 아파오고, 속도를 낼 수가 없다.

 

 

 

  

 

아~

정상에 가까울 수록 그 맑았던 날씨는 구름과 바람으로 매섭게 파고든다.

 

 

 

 

근데, 산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다.

삼강휴게소를 통과하고 정상까지 못해도 1시30분 이전에 올라야 한다고 들었는데,

내가 속도를 못내니, 이미 시간은 2시를 향해가고, 가파른 길에 쌓인 눈은 나를 자꾸 미끄러지게 한다.

아픈 다리에 간신히 몇 발자국 걷고 쉬고, 걷고 쉬고..

그러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올라가는 사람은 나혼자, 이젠 내려오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격려를 해주시는 분도, 혼자서 힘들게 올라가니 걱정해주시는 분도..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늦어서 못올라간다고 하는 얘기를 하실때마다 몸보다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이미 운동화는 젖어 발끝은 아려오고, 다리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돌아가실 지경인데

여기까지 와서 못올라간다니.. 

어쨌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무조건 오르고 보는거다.

 

 

 

 

 

와~정상이다..

무려 6시간이 넘게 걸려서 백록담에 올랐다.

드라마 삼순이 생각하면서..이 산에 오르면 뭔가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하지만 개뿔..아..힘들어 죽겠다.

 

예전에 지리산 천왕봉도 가뿐히 올랐고, 남미 여행하면서 4,000m가 넘는 안데스 고원도 잘 싸돌아다녔는데

한라산이 이렇게 힘들줄이야..

사실, 눈만 쌓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닌데, 눈내린 겨울산을 너무 만만한게 보았던 내 탓이다.

 

절대 눈내린 겨울산은 등산장비 제대로 갖추고 등반하자!!

 

 

 

백록담

 

그 맑았던 날씨도 정상 부근에서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게다가 바람은 어찌나 센지..

 

 

 

다행히 구름이 지나가고 잠시 백록담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잠시 구름이 비껴갈 때 보여주는 한라산의 이 멋진 광경은 아픈 다리 통증도 금새 잊게해준다.

그러나..그 마약과도 같은 기쁨도..

다시 내려갈 길을 보는 순간..아~ 그냥..누가 헬기로 날 데리러 오면 좋겠다.

 

 

 

성판악으로 내려가는 길

구름 때문에 길 끝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 길 끝까지 가면 천길 낭떠러지?

 

  

 

  

다행히 성판악코스는 정상 부분만 약간 가파르고

그 외에는 완만한 길이라 관음사코스의 가파른 길에 비하면 훨씬 길이 수월했다.

다만 이미 내가 기진맥진한 상태라, 그냥 좀비처럼 길만 보고 걷고 있다. 

 

 

 

 

진달래 휴게소

 

배도 너무 고프고, 목도 말라 휴게소를 들렀지만, 아무도 없다.

이 넓은 한라산에 아무도 없다..오로지 나 혼자라는 생각에 무서움이 엄습해 온다.

이미 들고온 물은 다 떨어지고, 할수 없이 쌓인 눈을 떠서 먹으며..

난 그렇게 또 길을 걷는다.

 

 

 

여전히 까마귀들만이 내 옆에 맴돌뿐이다

표지판을 보니 진달래 휴게소에서 성판악까지 아직 7km 이상 남아있다.

아이고~ 아이고~ I go~

이 뒤로는 사진이 없다. 그저 살아야 된다는 일념뿐

 

이든의 배낭기 Eden @ 윌셔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