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 황제들의 무덤 청동릉
康熙大帝 景陵
강희대제 경릉
보보경심에서 강희제 역을 맡았던 유송인(劉松仁)
요즘 뒤늦게 중국드라마 보보경심에 빠져서리 덕분에 청나라 역사에 푹빠졌다.
원래부터 중국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이렇게 드라마로 보니깐 더더욱 관심이 간다.
실제 드라마와 역사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도 궁금하고..ㅋ
청나라의 황릉은 크게 3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청나라가 만리장성을 넘기 전인 초대 1대 청태조와, 2대 청태종은 만주의 심양(瀋陽)에
3대 순치제부터 베이징에 수도를 정했기 때문에 너무 먼 심양까지 갈수가 없어서
이곳 준화시 당산에 능을 조성하기 시작하는데
4대 강희제에 이은 5대 옹정제(雍正帝, 보보경심 4황자)때, 청동릉에 조성될 자신의 능을 답사한 후,
"비록 규모는 크지만 형국이 완전하지 못하고, 혈(穴)자리의 흙에 진흙이 묻어 나와 쓸수가 없다"라며 불만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풍수가들을 동원해 새로이 만년 길지를 찾아 헤매다가 베이징 서쪽의 보정시(保定市) 역현(易縣)이고, 그곳에 옹정제는 능을 다시 조성하게 된다.
왜 4황자 옹정제가 다른 곳에 무덤을 조성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려진 바 없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는 설이 있기 때문에 죽어서도 아버지 곁에 묻히는게 두려웠다고 얘기도 있다.
어쨌든,
이로서 베이징 동쪽과 서쪽에 나뉘어 황릉이 조성되어 각각 청동릉과 청서릉으로 나뉘어 불리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되자, 옹정제의 아들인 견륭제는 능을 어디에 조성할 지 문제가 되는데,
견륭제는 후대황제들은 교대로 돌아가면서 황릉을 조성하도록 명한다.
물론, 이 규칙을 모두 지킨 것은 아니어서 다소 순서의 차이는 있다.
조사한 바로는
청동릉에는 순치제(順治帝·3대), 강희제(康熙帝·4대), 건륭제(乾隆帝·6대), 함풍제(咸豊帝·9대), 동치제(同治帝·10대), 서태후가 묻혀 있고,
청서릉에는 옹정제(雍正帝·5대), 가경제(嘉慶帝·7대), 도광제(道光帝·8대), 광서제(光緖帝·11대)가 묻혀 있으며,
마직막 황제 푸이 선통제도 후에 청서릉으로 유골이 이장되었다.
경릉으로 들어가는 신도
명나라 황릉에 비하면 여전히 청나라의 황릉은 그냥 내버려진 느낌이다.
한족이 세웠던 명나라의 경우, 중국 역사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만을 통치했고
그렇다고 그닥 중국을 부강하게 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 황제가 없었지만
오히려 한족이 오랑캐라고 불렀던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몽골제국의 원나라 다음으로 두번째로 중국에서 넓은 영토 확장을 했고
또한 역사적으로도 최고의 전성기라는 강건성세를 열었고
그 강건성세의 시초가 바로 강희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보보경심에서 약희가 강희제를 처음 만나서 했던 말이 일대 강건성세를 연 황제라고 하고 칭찬받음ㅋ
그나마 백성들의 칭송을 받은 강희제라서 그런지,
유적의 흔적이 다른 청나라 황릉에 비해 비교적 잘 보존된 편이다.
낙타는 개점 휴업중
이곳 강희제의 경릉은
청동릉에서도 서태후의 무덤에 이어 관광객이 제일 많이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렇게 낙타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지만
내가 너무 늦게 찾아왔는지, 지금 이곳을 찾는 사람은 나밖에 안보인다.
신공성덕비루(神功聖德碑樓)
신공성덕비
황제의 업적을 새긴 비석이다.
융은전(隆恩殿)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명나라 황릉은 능은전(陵恩殿)이라고 칭했는데,
현판을 보니 청나라 황릉은 높을 융자를 써서 '융은전'이라 칭하고 있다.
융은전 내부 모습
강희대제(康熙大帝)
제3대 황제인 순치제(順治帝)의 셋째 아들인 그는 순치제의 후궁 출신인 효강장황후 동가씨(孝康章皇后 佟佳氏)의 소생으로서 자금성(紫禁城)에서 태어난 첫 청나라 황제이기도 하다.
내용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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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의 강희대제 모습이다.
보보경심에 나온 유송인의 모습과는 좀 많이 차이나는듯
융은전을 나와 다시 지하궁쪽으로 이동
The Kangxi Emperor's Jingling in the Eastern Qing tombs
아쉽게도 경릉의 지하궁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통표(청동릉 전체를 볼 수 있는 표)로는 경릉 지하궁 입장이 안 되고, 따로 입장료를 받았다.
아쉽긴 했지만 이미 건륭제와 서태후등 여러 지하궁을 보았기에
지하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이 한몫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끊기기 전에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므로 시간 압박도 한몫했다.
그래서 할수 없이 지하궁 관람은 포기하고, 다시 돌아 나오는데 진짜 슬슬 걱정이 된다.
올때는 그나마 택시라도 타고 들어왔는데, 주변의 도시까지 도대체 뭘 타고 돌아가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버스는 커녕, 이동하는 사람 조차도 보이지 않아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이젠 비싸더라도 택시라도 잡아타야 겠는데, 이 사람도 없는 깡촌에 택시가 있을리 만무하고..
말은 안 통하고.. 아..어떡해~
그리고 정말 이 뒤로 엄청난 고생과 반전이 날 기다리고 있다.
결국 이날 밤 난 베이징으로 못 돌아갔다 ㅠㅠ
이든의 배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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