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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중국 고대 왕조의 수도는 어디였을까?

Eden Choi 2017. 1. 22. 05:03

낙양박물관에서 본

낙양성의 위치



낙양박물관(뤄양보우관)



중국은 박물관 입장료가 공짜^^


중국의 미친 입장료에 항상 부담이 되었지만 박물관 만큼은 공짜라서 가능하면 박물관 관람은 꼭 가려고 한다.

특히 여긴 낙양이 아닌가?

2천년 이전의 중국 고대 유적은 여기 다 몰려 있다.





낙양박물관은 초현대식으로 엄청나게 잘 꾸며놓았다.

게다가 그 규모가 후달달하게 크다.

역시 대륙임을 한눈에 느끼게 하는데 그래서 낙양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하루 꼬박 시간을 내어야 한다.





낙양은 구조고도라고 하는데, 9개의 중국 고대 왕조가 도읍으로 삼아서 그렇다고 한다.


동주, 후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후량, 후당


그리고 아직 그 역사적 실체를 완전히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의 도읍도 낙양 주변이다.

바로 이리두 유적이 발견되면서 중국 정부는 이를 하나라의 도읍지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상나라(은나라)의 수도 또한 언사상성으로 보기 때문에

중국 한족의 문명은 여기 낙양에서 시작되었다고 중국인들은 본다.


 


고대에는 강을 수(水)라고 했다. 그래서 낙수로 표기 현재는 낙하(洛河)라고 한다.

치수를 잘했다는 뜻은 물을 다스린게 아니라 강을 정비했다는 뜻


위 사진을 보면 수당 낙양성 옆에 주왕성이 있는데, 이는 동주시대 왕성이다.


주나라는 지금의 서안에 호경이라는 도읍을 정했으나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동생 주공단을 이곳으로 보내 낙읍이라는 부도를 건설하게 하였다.

이후 주평왕 때 그 웃지 않는 포사 때문에 봉화를 재미로 피웠다가 평왕이 살해되자

낙읍(현재의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이때부터 주나라는 '동주'라고 하고 이전의 주나라를 서주라고 한다.


주나라 천자는 여섯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탔다. 주천자가륙

주왕성터에서 주천자가륙이 발견되어 현재 그곳에 박물관이 개설되어 있다.




현재 낙양 백마사의 오른쪽에는 한위낙양성 유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더 오른쪽이 하나라 이리두 유적이다.

하나라는 아직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리두유적이 하나라의 도읍이었다고 못박아 말하기는 그렇지만

어쨌든 중국 정부는 이곳을 하나라의 도읍지로 보고 있다.

하나라는 중국 최초의 왕조로서 기원전 207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까지 존속했던 나라이다.

따라서 낙양은 중국 최초의 도읍이 있던 곳이다.


 다음으로 언사상성은 상나라의 도읍으로 본다.

상나라는 하나라 이후의 왕조로 갑골문이 발견되어 그 실체를 인정받았다.

상나라는 수도를 여러번 옮겼는데 이곳 언사상성은 초기 도읍지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허'인데 그래서 '상나라'보다 '은나라'라고 더 알려져 있었다.





한위 낙양성은 후한부터 조위(조조의 위나라), 서진, 북위까지의 낙양성을 말한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장안에 수도를 정했지만 왕망에 의해서 망한 후 후한이 되면서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다.

그리고 삼국지에서 유명한 동탁이 낙양을 불태워 아작을 낸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낙양시민은 동탁을 엄청나게 싫어한다고.




북위의 낙양성


중국 역사에서 남북조 시대를 연 북위의 낙양성이다.

북위는 한족이 아니라 선비족이 세운 나라인데, 효문제 때 수도였던 평성(지금의 대동(타퉁))에서 낙양으로 천도한다.

그리고 급속한 한화 정책을 펼쳐 중국에 편입되고자 했다.

유명한 용문석굴도 이때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용문석굴



여하튼 이번 낙양 여행에서는 잘 몰랐던 북위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는데

특히 문명황후 풍태후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겼다.

지금 중화티비에서 하는 '금수미앙'이 이 풍태후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북위는 자귀모사 제도가 있었다.

외척의 권세를 막기 위해 자식이 태자가 되면 그 생모를 죽여버리는 제도였다. 헉!!

풍태후라는 칭호를 보면 그녀는 황제의 어미니는 맞는 듯 한데

이 제도를 어떻게 그녀는 벗어났을까?

그리고 그렇게 외척을 맞고자 태자의 생모를 죽이려 했지만 그럼에도 풍태후가 북위를 통치한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금수미앙





당나라 측천무후 때의 낙양성 모습


당나라의 수도는 장안(지금의 서안)이었지만 측천무후가 황제가 되면서 이곳으로 천도한다.

물론 측천무후가 죽고 다시 장안으로 수도가 돌아가지만

여전히 낙양은 당나라의 동쪽 수도로서 역할을 했다.




낙양성


이곳은 수나라 양제 때 지금 이 위치에 낙양성을 건립하였고 당나라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수당 낙양성이라고 부른다.

현재 낙양시의 위치와 같다.

하지만 지금 낙양에 가면 수당시대 유적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강의 범람과 오래 세월에 땅속에 묻혀 버렸고 지금의 낙양은 그 유적위에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복원된 수당 낙양성 유지의 천당과 명당




복원된 낙양성 정정문(定鼎門)


 정정(定鼎)은 나라를 세운다는 뜻이다.

중국 최초의 나라 하나라 때 우왕이 9개의 청동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왕의 상징이 되었다.

솥 정(鼎)자는 바로 이 중국의 고대 솥의 모양을 딴 상형글자이다.




고대 중국의 솥

이것을 보면 솥 정(鼎)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느낌이 팍 온다.




측천무후







당삼채로 채색된 낙타




자금성 자녕궁


내가 갔을 때 자금성 자녕궁의 문물전을 하고 있어서 자금성 사진이 보이길래 찍어보았다.


자금성은 명나라의 영락제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세운 황궁으로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황궁으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고궁박물관으로 개관중인데, 저 사진에 표시된 자녕궁은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는 미개방 구역이다.






낙양박물관(뤄양보우관)


중국의 고대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부터

하-상-서주-동주(춘추전국)-진-전한-후한-조위-서진-북위(남북조시대)-수-당-오대십국으로 이어지는데,

이 기간동안 낙양은 이 모든 나라에서 수도나 부수도로서 역할을 했다.


아~ 그런데 현재의 낙양은 안습

유적보호를 위해 개발을 막았기에 오히려 지금은 그저그런 지방 도시로 전락해 버렸다.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