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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연인 다정강산 순치제의 어머니 효장문황후 소서릉

Eden Choi 2017. 4. 1. 06:44



황제의 연인: 다정강산(多情江山)




중드 다정강산에서 태후(효장문황후) 역할로 나온 원영의(袁詠儀)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만리장성을 넘어 대청제국이 되는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여인이다.

그녀는 청나라 제2대 황제인 청태종 홍태극(홍타이지)의 후궁이었다.

청나라가 되기 전 후금은 몽골족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몽골 과이심 부족의 여인들과 혼인하였는데

그녀의 고모가 홍타이지의 황후이고, 그녀의 언니가 홍타이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민혜공화원비이다.

사실 그녀는 언니에 밀려 홍타이지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홍타이지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그녀의 아들 복림(순치제)이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아들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홍타이지 사후 실권을 잡았던 시동생 도르곤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효장문황후 박이제길특 포목포태(博爾濟吉特 布木布泰)


그녀의 초상이다. 원영의가 훨씬 예쁘다


그녀는 순치제가 죽은 후에도 어린 손자 강희제를 대신해 청나라를 이끌었기에

자금성을 차지한 후 청나라 초기 역사는 그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그런 그녀의 능인 소서릉은..




청동릉


청동릉은 역대 청나라 황제들이 묻힌 곳이다.


제1대 청태조와 2대 청태종의 무덤은 아직 청나라가 중국 전역을 지배하기 전이었기에

후금의 수도였던 만주 심양에 있고, 순치제부터 여기 청동릉에 능을 조성하였다.

그래서 순치제의 무덤이 청동릉 제일 중심에 있다.

그런데 그런 순치제의 생모이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녀의 무덤은 청동릉 담장 밖에 위치하고 있다.

(위 사진의 소서릉이 효장문황후의 능이다)




소서릉 가는 길



원래 청나라는 황후의 능을 황제와 합장하거나 황제릉 옆에 조성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능은 심양에 있는 남편인 청태종의 소릉에 합장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의 능은 만주가 아니라 북경에서 100km 떨어진 여기 청동릉 담장 밖에 조성되었다.
순치제가 젊은 나이에 죽어 그녀보다 한참 먼저 죽었기에

그녀는 유언으로 아들 곁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의 능에 묻혀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쉽게 그녀의 무덤을 조성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옹정제(그녀의 증손자) 때가 되어서야

비록 거리는 수백km 떨어져 있지만 남편의 무덤인 소릉의 능역권이란 뜻으로

 능의 이름도 소릉의 서쪽, 소서릉으로 명명하고 대신 청동릉 담장 밖에 조성이 된 것이다.

청동릉 안에 조성하면 그건 소릉의 영역이 될 수가 없으니깐.

후궁이었던 그녀의 아들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실권을 장악한 시동생 도르곤에 의한 것이었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도르곤에 재가했다고 하는데
서로 사랑했다는 얘기도 있고, 도르곤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효장문황후는 남편의 무덤인 소릉에 함께 묻히는 것을 꺼려했을 수도 있다.




소서릉(昭西陵)


아쉽게도 이때 나는 효장문황후가 그렇게 대단한 여인이었는지 몰랐기에

무덤 내부까지는 들어가 보지 않고 여기서 사진만 찍고 돌아섰다.


황후의 무덤인데도 이렇게 따로 조성할 정도였으면 멀어도 들어가 봤어야 하는건데

 다정강산을 미리 봤더라면 좋았을 것을 ..ㅠㅠ 





소서릉을 지나 청동릉으로 들어가는 입구

대륙이라 택시를 잡아타고 들어 가는데도 한참을 달린다.






황릉으로 들어가는 신도에서 택시 기사분에게 사진 한 장 부탁했다.





동소완 역의 후몽요


야사에는 중국 강남의 기생 동소완이라고 설이 있어서 다정강산에서도 그것을 채택했는데

역사적으로는 그녀가 동소완이라는 것은 사실무근이라고 한다.


실제 역사에서 그녀는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 내대신 악석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드라마에서는 그래서 그녀가 악석의 양녀로 들어가 만주족으로 귀화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18살에 입궁한 후 순치제의 사랑을 독차지 하여 황귀비의 지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아들이 생후 100일만에 죽고

그녀 또한 얼마 후에 천연두에 걸려 불과 21살의 나이에 죽었다.


순치제는 그녀를 황후로 추존하려고 했으나 반대에 부딪쳐 이루지 못하고 강희제 때 효헌단경황후로 추존되었다.




순치제 역의 고운상


순치제 복림은 6살에 황위에 올라 24살에 죽었다.

사랑했던 동악비가 천연두에 걸려 죽자 그 또한 얼마 후에 천연두에 걸려 죽었다. 

야사에는 그가 천연두로 죽은 게 아니라 동악비가 죽고 너무 슬퍼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다는 얘기가 있다.




순치제의 초상

20대 초반의 모습일텐데 좀 노안인 듯




다정강산에서 순치제 역할을 맡았던 고운상이 중드 미월전에서는 의거왕 적려 역을 맡았었다.

변발한 모습과 차이가 많이 나서 못 알아 볼 뻔했다.


중국 최초의 태후 '미월'

http://blog.daum.net/mickeyeden/16156281



이든의 배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