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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성사 삼탑 남조(南詔)국의 역사 칠종칠금의 남만은 어디인가?

Eden Choi 2018. 8. 24. 18:39



대리 숭성사 삼탑




중화문 뒤로 보이는 문이 창산문

창산을 등지고 찍은 사진이기 때문에 저 성문 뒷편이 대리고성이다.



창산문


사진의 창산문(대리고성의 서문에 해당)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면 숭성사가 있다.

숭성사는 여기서 버스로 2-3정거장 정도 거리인데 갈 때는 구경도 할 겸 걸어서 갔다.




대리고성 창산문과 숭성사 위치 지도




숭성사 가는 길




대리농림직업기술학원(大理农林职业技术学院)


가다보니 큰 대문이 보이길래 여기가 숭성사 입구인가 했는데 한자를 찾아보니 기술학원으로 나온다.

다행히 여기에서 조그만 더 지나면 숭성사가 나온다.




숭성사 삼탑 입구

멀리 삼탑이 보여서 쉽게 알 수 있다.




삼탑은 A 5개 국가 풍경구이다.

5개면 최고 등급이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지 한국어 안내가 있다.

입장료는 121원




가까이 갈 수록 삼탑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오늘 날씨가 굉장히 맑았음에도 워낙 이곳이 고지대이다보니 창산 위로는 구름모자를 쓰고 있다.

 



가운데가 주탑인 천심탑(千尋塔)이다.

전체 명칭은 법계통령명도승탑(法界通靈明道乘塔)이라고 하는데

길어서 그런지 보통 천심탑으로 안내되었다.

이 탑은 남조의 권풍우(勸豊祐) 시기(823 ~ 859)에 숭성사와 함께 건축되었는데 높이 69m로

천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크기로 유명하다.

이후 2개의 작은 탑이 더 세워지면서 현재는 숭성사 삼탑이라고 불리고 있다.




남조의 위치와 당시 시대 배경


남조는 당나라 때 시기로 지금의 운남성 지역을 중심으로 한 국가이다.

지도에 나온 양저미성은 남조의 수도로서 지금의 대리고성이다.

이후 남조가 망하고 혼란기를 겪다가 다시 통일 왕조를 이룬 것이 대리국이다.


이 남조는 특히 동남아시아에 영향을 미쳤는데

남조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버마족, 타이족 등이 이동을 해 지금의 버마, 태국, 라오스 등에 정착하게 된다.

이후 남조에 이은  대리국이 몽골에 망하면서 더 많은 민족의 이동이 발생했고

특히 타이족은 지금의 태국 땅에 최초의 통일왕조 수코타이를 건설한다.

그래서 태국의 역사는 이 수코타이 이전의 선주민 역사와 타이족이 건설한 수코타이 이후의 역사로 나뉜다.


만약 몽골에 의해 망하지 않았다면 운남성은 지금 중국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




대리 숭성사 삼탑







뒤에 작은 탑 2개는 주탑을 향해 약간 기울어져 있다.






탑의 기단에 올라 바라본 이해호(얼하이호)




탑의 뒤쪽으로 가면 탑에서 발견된 유물 전시실이 나온다.






1900년대 삼탑의 모습

사진을 보면 이때 숭성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숭성사는 청나라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2005년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삼탑은 지진과 화재에도 살아남아 비록 중간중간 보수는 거쳤지만 천년이 넘게 버티고 있다.






다시 뒤로 더 가면 남조건극대종(南诏建极大钟)이 있는 종루가 나온다.

이름으로 봐서는 남조국 시대에 만들어진 종인가 보다.




남조건극대종



종루에서 바라본 삼탑


삼탑에 대해서 조사하다 보니

남조(南詔)의 역사에 대해서 궁금해 졌는데 남조에 대한 역사 자료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위키피디아에 남조 역대 왕계보가 나와 있어서 정리해 봤다.



1대 고조(高祖) 기가왕(奇嘉王) 휘:세노라(細奴羅) 재위: 653년 ~ 674년  
2대 세종(世宗) 흥종왕(興宗王) 휘: 라성염(羅盛炎) 재위: 674년~712년  
3대   염각(炎閣) 712년  
4대 태종(太宗) 위성왕(威成王) 성라피(盛羅皮) 712년 ~ 728년  
5대  귀의왕(歸義王) 피라각(皮羅閤) 728년 ~ 748년  
6대  신무왕(神武王) 각라봉(閣羅鳳) 748년 ~ 779년 
(추존)  도혜왕(悼惠王) 봉가이(鳳伽異) (추존) 
7대  효항왕(孝恆王) 이모심(異牟尋) 779년 ~ 808년
8대  효혜왕(孝惠王) 심합권(尋閤勸) 808년 ~ 809년 
9대  유왕(幽王) 권룡성(勸龍晟) 809년 ~ 816년 
10대  정왕(靖王) 권리성(勸利晟) 816년 ~ 823년 
11대  소성왕(昭成王) 권풍우(勸豊祐) 823년 ~ 859년
12대  경장제(景莊帝) 세륭(世隆) 859년 ~ 877년 
13대  성명문무제(聖明文武帝) 융순(隆舜) 877년 ~ 897년
14대  효애제(孝哀帝) 순화정(舜化貞) 897년 ~ 902년 중흥(中興) 898년 ~ 902년


숭성사 삼탑은 11대 권풍우 소성왕 때 건축된 것이다.

그리고 남조 왕의 이름을 잘 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성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부자지간으로 왕위를 이은 것은 맞는데 왜 이렇게 성이 다를까?

보면 이름 끝자를 따서 다음 왕의 성이 되었다.

세노라-라성염-염각-성라피-피라각-각라봉...

이런 식으로 아버지 이름 끝자가 아들의 성이 된다. 독특한 작명 방식이다.

3대 염각과 4대 성라피는 이 규칙을 어기는데 이는 성라피가 3대 염각의 아들이 아니라 2대 라성염의 아들로 3대와 4대는 형제지간이다.

 




그리고 남조 이전에는

몽수(蒙嶲)·월석(越析)·시랑(施浪)·등섬(邆賧)·낭궁(浪穹)·몽사(蒙舍) 등의 육조국(六詔國)으로 이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 중 몽사가 제일 남쪽에 있어서 남조라 불렸고 이 몽사는 대몽국이란 이름으로 당나라와 수교를 맺는다.

그리고 5대 피라각 때 나머지 5개국을 통합하면서 국명도 남조로 바뀐다.



제갈량의 칠종칠금


삼국지에 보면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면서 남만의 맹주였던 맹획을 7번 잡았다가 7번 놓아주는 칠종칠금 고사가 있는데

내가 어릴 때 남만은 베트남 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삼국지의 남만은 지금 운남성에 위치한 이 남조의 전신인 여러 부족 국가를 말한다.


그렇지만 남조의 수도였던 이 대리에서는 이 칠종칠금의 이야기가 다르게 전승되는데

제갈량이 맹획을 7번 잡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맹획이 제갈량을 7번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기 지역의 역사가 패배했다는 것은 싫었을 것이다.


다만 이 칠종칠금이 실화인가 하는 문제도 여전히 있다.

정사 삼국지에 남만 정벌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칠종칠금이 실제 사건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종루를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숭성사가 나온다.


숭성사는 다음 편에 계속


이든의 배낭기